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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당신의 전화를 외면한 이유 (2-2-일, 맑음) 본문

일상

당신의 전화를 외면한 이유 (2-2-일, 맑음)

달빛사랑 2025. 2. 2. 21:19

 

늘 보아오던 일요일의 풍경이었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활짝 웃는 화초들의 얼굴을 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테라스에 나가 담요를 탁탁 털 때 정강이와 뺨을 훑고 가는 겨울바람이 의외로 유순해서 좋았습니다. 성실한 보일러는 맞춰놓은 온도에 이를 때마다 빨간 불빛을 내며 인사하곤 했습니다. 작은 방의 빨래는 바싹 말라 단정하게 개어서 옷장에 넣고, 침대보는 네 모서리를 맞추어 반듯하게 깐 후 팡팡 쳐서 평평하게 만들었습니다. 보기 좋았습니다. 냉장고를 열고 양배추를 잘게 썰어 밀폐용기에 넣어두었고, 포기김치를 썰어 작은 김치통에 소분(小分)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일은 하나도 급하지 않은 일들입니다. 습관처럼 청소하고 무료해서 빨래하고 마음이 한갓지지 않아 이것저것 들쑤신 다음 정리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대개는 지루한 오전이나 오후의 시간이 지워집니다. 물론 그렇게 했으나 때때로 지루한 시간이 이곳에 머문 채 내내 나의 하루를 지배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내 일요일의 풍경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도 나는 습관적으로 분주했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2월이 시작되며 만난 첫 일요일, 나는 이해할 수 있는 아쉬움과 낯섦과 이해할 수 없는 지루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만의 세계에서 타인들의 세계로 다시 나가 부대껴야 한다는 사실이 잠시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당신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벨이 울리는 내내 휴대전화 액정에 떠서 나를 부르는 당신의 이름을 보며 받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받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당신은 온라인상에서 만나온 친구이고, 온라인상에서만 만나고 싶은 친구이며, 온라인상에서만 만나야 하는 친구입니다. 이 관계의 원칙을 깨거나 벗어나면 나는 무척 당황스럽고 어색할 겁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벨소리가 멎는 순간 나의 일요일이 온통 낯설어졌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생각이 깊어지며 한동안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몸은 한가로운데 마음이 오히려 분주한 오늘 같은 일요일은 무척 드뭅니다. 지루하지 않게 해주어 고맙다고 당신에게 인사해야 할까 봐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당신의 전화가 내게 접수되지 않은 일로 인해 당신의 일요일도 무척 재미있어질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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