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눈을 기다리며 (1-16-목, 흐림) 본문
기다리는 눈은 오지 않았다. 기다림이 늘 성취되는 건 아니어서 별로 서운하지는 않다. 단지 이번 주 날씨를 확인하다가 오늘쯤 눈 내릴 확률이 크다는 예보를 봤을 뿐이다. 물론 변죽조차 울리지 않았던 건 아니다. 몇 차례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낮게 내려앉으며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눈은 없었다. 나이를 먹어도 하늘에서 뭔가 내리면 왜 그리 좋은지. 비도 괜찮고 눈도 괜찮고 심지어 진눈깨비도 괜찮다. 그래도 더 나은 걸 고르라고 하면 눈보다는 비가 좋다.
눈에 얽힌 추억이 참 많다. 애인들과 함께 맞았던 밤눈에 관한 추억부터 백마에서 자취하던 친구의 집 방문을 열었을 때 만났던 눈도 있다. 그 방은 문을 열면 바로 툇마루와 마당과 멀리 들판까지 훤하게 보이는 방이었다. 이불속에서 아무도 밟지 않은, 마당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피우던 담배는 정말 구수하고 맛있었다. 또 6살쯤 되었을 때 이웃들에게 동생의 돌떡을 돌리며 맞던 눈도 명확하게 기억난다. 손에 든 접시의 따듯한 온기와 덮은 종이로 폴폴 나던 김과 펄펄 내리던 눈, 잊을 수가 없다. 엄마와 함께 크리스마스 아침 그 동생이 낼모레 환갑이니, 세월 참 덧없이 빠르구나.
눈은 오지 않았으나 눈을 기다리다 눈에 얽힌 추억들 몇 개를 소환했다. 나쁘지는 않았으나 모든 추억이 다 산뜻하고 유쾌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몇 차례 잠깐 쓸쓸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추억에 지나치게 기대다 보면 현실의 문제가 희석된다. 그건 건강한 일이 아니다.
종일 면만 먹었다. 아침에 해장라면, 점심에 칼국수, 저녁에 냉면, 그리고 아이스크림 3분의 1통, 거의 혈당지수 올리기로 작정하고 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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