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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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쓸쓸한 빈소 (1-18-토, 맑음)

달빛사랑 2025. 1. 18. 23:12

 

 

후배 S가 전화해 은준 부친 빈소에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울증울 앓고 있는 그녀였기에 약간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으나 거절할 수 없어 6시, 집을 나오면서 S에게 전화해 장례식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교통편을 고민하다가 전철로 시민공원역까지 간 후, 그곳에서 33번으로 환승하기로 했다. 그게 가장 빠른 노선이었다. 집 앞에서 36번 버스를 타도 인하대병원 장례식장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지만 그 노선은 빙 돌아서 가는 노선이라 시간이 30분은 더 걸렸다. 33번으로 환승한 후 한 정거장을 갔을 때 S가 버스에 올랐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버스 앞 좌석 빈자리에 앉았다.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버스가 목적지 두 정거장 앞인 숭의역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S는 나를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33번 버스는 병원 옆 좁은 도로를 통해 장례식장 바로 앞까지 진입했다. 그곳이 회귀점인 모양이었다. 장례식장 간다는 핑계로 작가회의 총회는 가지 않았다. 

 

빈소에 도착해 조문하고 접객실로 이동하자 김 모 원장과 유경, 근직과 혁재가 앉아 있었다. 은준은 결혼 안 한 총각이고, 그의 여동생은 결혼은 했으나 아이가 없었으며, 게다가 모종의 이유로 오래전부터 친척들과 인연을 끊은 채 살아왔기 때문인지 빈소에는 조문객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심지어 부친의 관을 운구할 사람조차 부족해 결국 나와 갈매기 종우 형도 함께 들기로 했다. 그래서 어렵사리 나, 종우 형, 혁재, 근직, 동철(은준 친구), 재면(은준 후배) 등 운구할 사람을 확보했다. 매사에 잡지식도 많고 똘똘해 보였지만, 이번에 '큰 일'을 치르는 과정을 지켜보니 은준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 같았다.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긴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았으니 낯설긴 했겠지.

유경이 차를 가지고 왔다는 말을 듣고 S를 집까지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다. 유경은 잠깐 "방향이 다르긴 한데...." 하며 망설이긴 했지만(김 원장도 데려다주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하도 단호하게 부탁하자 "그러지요, 뭐" 하고 승낙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다 내 말을 들은 S는 우리와 더 있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는 S에게 "유경이 차편으로 먼저 가는 게 좋겠어. 술 마시거나 늦으면 상우(남편)가 걱정해" 하자, 풀 죽은 표정으로 "알았어요" 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코트와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녀들이 돌아간 후 작가회의 총회를 마친 김모, 강모, 병걸, 명수 등 4명의 동료 시인들이 조문왔다. 3명이 빠져나가 휑했던 접객실이 새로 도착한 4명 때문에 그나마 덜 쓸쓸해 보였다. 김모와 강모 시인이 서구 검단과 김포 근처에서 살기 때문에 차가 끊기기 전에 가야 한다며 10시쯤 일어섰다. 나도 그녀들과 함께 나와서 병원 앞에서 택시를 타고 주안으로 이동해 인천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했다. 집에 도착하니 10시 40분이었다. 장지는 인천가족공원 안에 있는 '호국봉안담'이고, 운구를 위해서 내일 아침 7시까지 장례식장에 가야하는데, 잠이 쉽게 올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엄마도 이맘때 돌아가셔서 그런지  우리 테이블에 와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권하던 은준의 모친을 보면서 엄마 생각 많이 났다. 젊었을 때 무척 멋쟁이셨고, 강단 있게 살아오셨던 은준 모친의 드문드문 빠진 치아들이 안쓰럽께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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