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오랜만에 과음하다 (10-27-금, 맑음) 본문
오후 4시쯤에 병균을 만나 삼겹살과 차돌박이를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오래전부터 그를 만나 고기와 술을 사주고 싶었다. 그가 연애에 실패하고 칩거를 시작한 후 나는 그를 연민했다. 그는 성정이 불 같아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많지 않다. 사실은 연애 실패보다도 나에게는 그 점이 더 안타깝다. 그리고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했고 언제부터인가는 나를 '장례위원장'이라고 불렀다. 나보다 훨씬 일찍 죽을 것이기 때문에 미리 장례를 책임질 선배로 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우수갯소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무척 진지했다. 그래서 나는 현재 그의 장례를 책임질 장례위원장이다. 실제로도 그는 삶에 대해 크게 미련을 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빨리 죽을 것 같지도 않다. 장례위원장을 시켜놓고 나보다 훨씬 오래 살면 그건 무척 웃긴 코디일 것이다.
둘이서 소주 3병을 나눠 마시고 제물포역 북광장 쪽으로 이동해 실내 포장마차에서 2차를 했다. 혁재가 합류했다. 신포동에서 이미 술 마시고 있던 그는 병균의 채근에 어쩔 수 없이 우리와 합류한 것이다. 물론 대놓고 그런 마음을 표현한 건 아니고, 내가 그리 생각한 것이지만, 아무튼! 그리고 약간 취해 있었다. 우리도 그 정도의 취기를 느끼고 있었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병균과 혁재는 친구 사이고, 그것도 절친이고 혁재는 병균을 무척 아끼고 있으므로 병균의 부름에 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 술자리에서 혁재는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나와 H의 관계에 관해서도 너무 가볍게 말을 해 나는 약간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드러내진 않았다. 그는 좋은 후배이지만, 입이 다소 가볍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사적인 정보를 함부로 누설한다는 죄의식 같은 게 없다. 그는 비밀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은 한 게 왜 문제가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3차로 깡통블루스를 가려다가 문을 닫아 근처 '흰 고개 검은 고개'에 들렀다. 그곳에서부터는 술이 술을 마셨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집에는 그리 늦게 들어오진 않았지만, 버스 안에서 내내 잤다. 그리고, 이런 제길!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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