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우리 비서들은 미식가 (03-29-수, 맑음) 본문
우리 비서들은 미식가들이다. 그래 그런가 점심때 메뉴와 식당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롭고 명확하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답게 직접 가보았거나 인터넷을 통해서 확인한 맛집 목록이 수두룩하다 보니, 나를 포함한 '영감님'들이 메뉴를 고르면 그것(음식)을 잘하는 식당의 이름과 위치가 술술 나온다. 또 자신들의 SNS에 업로드한 사진을 보여주기 때문에 선택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음식을 먹을 때도 깨작깨작 먹지 않고 복스럽게 먹어서 참 좋다. 그녀들이 음식을 남기는 걸 본 적이 없다.
오늘은 비서실 김 모 사무관이 연말정산 환급금이 많이 나왔다며 점심을 사기로 했다. 그러면서 카드를 아예 비서들에게 맡겼고, 생선을 거머쥐 고양이처럼 그녀들은 자신들의 정보력을 십분 활용하여 꽤 괜찮은 일식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점심때는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 어려운 집이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가 식사할 때, 문밖에는 자리 나기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보운 형과 비서실장은 매운탕을 먹었고, 어제 술을 마신 김 사무관과 나는 나가사끼 짬뽕을, 그리고 여비서들은 모두 회덮밥을 먹었다.
서브 메뉴로 나온 닭튀김도 너무 맛있었다. 어찌나 부드럽던지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주 메뉴인 짬뽕도 무척 담백했는데, 다만 짬뽕의 칼칼함을 위해 청양고추를 넣지 않고 (하긴 일식이니까) 고추기름을 넣은 건 다소 아쉬웠다. 국물까지 싹 비운 후 눈이 마주친 비서들에게 엄지손가락을 펴보였더니, 예약을 담당한 김 비서는 '어때요, 제 말이 맛지요?' 하는 표정으로 나와 보운 형, 비서실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뿌듯해했다.
식사 후 보운 형이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주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치즈 호두과자 한 상자를 사서 비서들에게 주었다. 모두 소녀처럼 기뻐했다. 비교적 조용하게 오후의 시간이 흘렀다. 퇴근 무렵, 후배 상훈에게 전화 왔지만 금요일쯤 만나기로 하고 일찍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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