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가을, 여행을 꿈꾸다 (9-13-火, 맑음) 본문
가을은 점점 깊어가는데 나는 소라껍데기 같은 내 방에서 가는 가을을 속절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가을이 다 가기 전 나는 이 소라껍데기를 벗어나 내 시든 의식을 청량하게 만들어줄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모든 게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공연도 전시도 도무지 가고 싶지 않다. 공연이나 작품에 관한 좋은 기억이 아니라 방명록에 ‘나 왔다 갔음’을 알리는 서명을 하고, 이로써 ‘나는 당신과의 의리를 지켰어요’라는 의무 이행의 안도감만 품고 돌아오는 길은 쓸쓸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적어도 그러한 품앗이 의식이나 의무감이 고여 있는 나를 밖으로 불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마저도 아니라면 껍데기 속의 고인 생활에 만족하며 히키코모리의 삶의 살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러 마음에 들지 않는 공연이나 전시를 감상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는 게 껍데기 속에서 고인 채 살아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게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나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가을이면 늘 여행을 꿈꾼다. 그것이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진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여행을 꿈꾸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부푸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득 인천을 떠나 사는 지인을 생각하게 되고, 그가 낙향해 사는 마을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잠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늘 보아온 풍경을 뒤로하고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일은 딱딱해진 의식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일이고, 정체된 상상력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과연 나는 올가을에 짧은 여행의 기록이나마 남길 수 있을까. 그 익숙하면서도 볼 때마다 새로운, 먼 곳의 그리운 풍경들이 나를 좀 더 큰 소리로 불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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