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인권 공모 작품 심사ㅣ미추홀구청 (9-14-水, 맑음) 본문
날씨가 좋아 괜스레 기분이 싱숭생숭했던 하루였다. 나뭇잎의 색깔도 시나브로 변하고 있고, 청사 옥상, 흡연하러 올라오는 직원들의 옷차림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체크무늬 셔츠들과 원색의 옷들이 많이 눈에 띈다. 많은 직원이 ‘여름’을 벗고 ‘가을’을 입었다. 나처럼 더위를 많이 타 여름이 긴 사람은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가을(계절)을 읽곤 한다. 9월 1일 자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매일 옥상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던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 청을 떠난 모양이다. 같은 부서는 아니었으나 늘 보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약간 서운했다. 점심은 비서실장이 약속이 있어 보운 형과 나만 돼지국밥을 먹었다.
오후에는 미추홀 구청 인권센터에서 인권작품 공모전 심사를 진행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담당자가 응모작이 적다고 엄살을 부렸는데 오늘 보니 제법 많은 작품이 접수되어 있었다. 청소년 작품들이 특히 많았다. 재작년보다 작품 수준들이 높아져 심사위원으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작품 수가 많았지만, 위원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해 오후 5시쯤 모든 심사가 끝났다. 심사를 마치고 위원장을 제외한 심사위원들은 제물포역 뒤에서 뒤풀이를 가졌다. 간단하게 끝내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후배가 1차를 계산하는 바람에 근처 ‘흰 고개 검은 고개’로 2차를 갈 수밖에 없었다. 지하 공간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정겨운 집이다. 그 집에서만 판다는 호리병 동동주를 (둘이서) 4병이나 마셨더니 취기가 느껴졌다. 많이 취한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일어설 때가 된 것이다. 10시 조금 넘어 술값을 계산하고 일행들보다 먼저 일어섰다. 만수역에 도착하니 10시 40분, 이른 시간은 아닌데도 주변의 모든 술집은 손님들로 붐볐다. 가을밤은 누구에게나 술을 권하는 모양이다. 신포순대 앞을 지날 때는 국밥을 한 그릇 사갈까 생각했는데, 결국 그만두었다. 문은 닫지 않았지만, 뒷정리가 한창이었다. 빈집에서 종일 나를 기다렸을 화초들이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접란 꽃대에서 꽃이 두어 송이 벙글어 있었다. 좋은 징조다. 내일 복권이나 한 장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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