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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나는 이제 흠집과 상처에 무뎌질 거다(13일, 금, 구름) 본문

일상

나는 이제 흠집과 상처에 무뎌질 거다(13일, 금, 구름)

달빛사랑 2022. 5. 13. 00:14

 

그동안 사물의 흠집에 무척 예민했다. 자동차 표면의 흠집이나, 휴대폰 액정의 잔 흠집, 노트북 커버나 액정의 흠집, 책상의 흠집, 시계 유리의 흠집, 안경의 흠집 등 내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사물의 표면에 난 흠집을 못 견뎌했다. 그래서 자동차의 경우, 세차를 밥 먹듯 하고, 왁스를 칠하고, 파우더를 묻혀 표면에 광을 냈다. 휴대폰이나 태블릿은 강화유리나 보호 필름을 붙여 흠집에 대비했다. 세상의 모든 흠집을 없애려는 듯 닦고 문지르고 덮고 붙였다. 내 소유의 사물에 흠집이 나면 내 몸에도 손톱으로 할퀸 자국이 나는 것만 같았다. 흠집 없이 매끄러운 표면에 대한 집착은 깔끔한 성격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나도 모르게 조금씩 생긴 수많은 마음의 흠집은 보지 못했다. 정의감, 자존심, 이타심, 이해심, 도덕심, 포용심 등 한때는 새삼스럽게 다짐하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작동하던 소중한 마음들이 덜걱거린다. 누적된 흠집이 작동을 방해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흠집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마음의 흠집도 다스렸어야 했다. 흠집으로 무뎌진 분별심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타인의 흠집을 찾아냈을 것인가.

 

오늘 버스에서 휴대폰의 보호필름을 떼어버렸다. 잔기스가 너무 많아 보기 흉했다. 액정을 보호하겠다며 붙인 보호필름 때문에 오히려 늘 지저분해진 액정을 봐야 한다는 일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새 필름을 붙이면 한동안은 깨끗하겠지만, 오래가지 않아 필름은 다시 상처 입을 것이다. 그러니 휴대폰을 교환할 때까지 액정 본래의 산뜻하고 깨끗한 표면은 볼 일이 없는 것이다. 이 무슨 허튼짓인가. 보호라는 미명 하에 늘 덧붙여진 필름의 흠집을 감수하는 건, 마치 마음의 흠집은 보지 못한 채 보이는 사물의 흠집에만 예민해지는 어리석음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하여, 이제 자연스러운 흠집에는 초연해지려 한다. 세월이 남긴 시간의 주름 같은 흠집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것이다. 인위적으로 감추려고 할 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사라지는 법이다. 내 얼굴도 피부도, 그리고 눈가의 주름도 세월이 남긴 흠집으로 가득하지만, 그 흠집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내면이 세월의 흐름만큼 성숙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게 멋지게 늙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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