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행복한 긴장감, 숙제를 끝내고 본문
아침부터 바빴다. 청탁받은 글 세 편을 몰아 써서 P에게 보냈더니 “오늘은 (글이) 마구 쏟아지네요.*^^*”라는 답장이 왔다. 그럴 리가. 저절로 쏟아지는 건 없다. 의식적으로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머릿속에서 대략의 내용을 정리한 후 쓰는 것이다. 대개는 막힘없이 글이 풀려가긴 하지만 가끔은 글이 더 진행되지 않고,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경우도 더러 있다. 최근에 쓰는 글들은 대체로 순수 문학적인 글이 아니라 칼럼이나 실용문에 해당하는 글들이라서 오히려 쉽게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를 만약 요즘 쓰는 글처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 편의 시를 한 달간 고민할 때도 있으니, 표면적 가성비로 보면 가장 효율이 떨어지는 글쓰기다. 하지만 하나를 완성했을 때의 심리적 만족감은 칼럼 10편을 쓴 것보다 크다. 그 매혹적인 글쓰기의 즐거움 때문에 시인은 시 쓰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나는 지난 두어 달 동안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다. 이런데도 나를 시인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요즘이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좀 더 실제적인 글을 여러 편 써야 하는데, 걱정이다. 쓰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러다가 내 감성과 의식구조가 산문적으로 변해버릴까 두려운 것이다. 혼자 밥 먹기 싫어서 사무실에 있는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그런데도 퇴근 시간이 다 되어도 허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외로움이 마음만 다치게 하는 게 아니라 육체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많은 글을 ‘뽑아냈으니’ 갈매기에 들러 막걸리나 한잔하고 갈까.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이제 흠집과 상처에 무뎌질 거다(13일, 금, 구름) (0) | 2022.05.13 |
---|---|
어제 내가 한 일이 옳은 일이었으면 좋겠다 (0) | 2022.05.12 |
1986년 5.10 교육민주화선언 (2022-05-10, 맑음) (0) | 2022.05.10 |
5월의 지구는 한층 더 헐거워지겠군 (0) | 2022.05.09 |
5월 8일(일), 어버이날ㅣ부처님 오신 날 (0) | 2022.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