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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박영근 시인 16주기 추모제(부평신트리공원 시비 앞) 본문

일상

박영근 시인 16주기 추모제(부평신트리공원 시비 앞)

달빛사랑 2022. 5. 14. 00:14

 

박영근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6년, 참으로 세월이 무상하게 흘렀다. 그렇다면 형은 나보다 훨씬 어렸을 때 하늘에 들었다는 말이다. 1958년생이니 작고 당시 나이는 만으로 48세, 쉰 살을 미처 넘기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지상에서는 대개 명정 상태였으며 범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니 별다른 아쉬움 없이 하늘에 들었을까. 물론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죽음의 순간은 두려운 법일 테니까. 오히려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삶에 대한 갈망은 더욱 지극했을 지도 모른다. 남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주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 그때까지 이룬 성취의 잔영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서 있던 그를 얼마나 두렵게 만들었을 것인가. 

시인으로서 박영근은 탁월한 서정 시인이었고, 활동가로서의 박영근은 치열했으나, 자연인 박영근은 그리 건강한 삶을 살지 못했다. 당시에는 시인의 일탈이 어느 정도 용인되던 시대였지만, 지나치게 술을 가까이 한 그의 삶은 그의 건강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지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민폐가 되기도 했다. 시대는 그를 이해하기도 했지만, 망가뜨리기도 한 셈이다.

그래서 몇몇 후배는 그의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인색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삶과 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동의 원칙과 대의에 철저했던 그들로서는 충분히 그런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일탈에 동조하거나 일정 부분 용인했던 사람으로서 지금은 말을 아낄 생각이다. 그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고찰과 냉정한 평가는 후대의 연구자들이 진행할 것이다. 

 

16년 동안 한결같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는 동료들이 있으니 그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게다가 모든 문우가 돌아가면서 생전에 그가 그리도 좋아하던 막걸리를 시비 주위에 뿌려주었으니 하늘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그가 있는 세상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세월을 살아 가고 있다. 그래서 더욱 해가 갈수록 그리움이 간절해지는 모양이다.

참석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한 후, 작가회의 몇몇 선후배들은 따로 모여 오랜만에 봄밤의 정취를 느끼며 원 없이 대작(對酌)했다. 바람이 다소 세게 불어 노천에서 술 마시는 내 팔뚝에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지만, 마음은 풍선처럼 둥둥 떠다녔다.

 

"영근 형,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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