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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의원님들께 답변드립니다" 본문

일상

"의원님들께 답변드립니다"

달빛사랑 2021. 3. 20. 00:11

 

의원님들의 질의에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시의회 의장님 및 의원 여러분. 여러분의 다양한 고견과 진심 어린 우려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 모든 말씀의 합리적 핵심들을 마음에 깊이 새겨 앞으로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펼쳐나가는 데에 성심껏 참고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교육 책임자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하며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해당 사안과 교육에 대한 소신을 말씀드림으로써 의원님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개교 87년의 역사를 갖는 제고가 인천의 대표적인 명문고라는 건 인천시민이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통칭 명문고라고 할 때의 그 명문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간에는 학생들을 서울대에 많이 보내거나 연대 고대 등 서울 소재 대학에 많이 입학시키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인정하는 명문의 기준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한때 우리는 ‘선발집단’이라는, 학교와 학생들을 성적으로 위상 짓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교육이 오늘날처럼 다양하게 이루어지기 전에는 학생의 능력을 성적을 통해 획일적으로 구분 지어 평가했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교과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다닌 학교가 명문고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21세기인 현재는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학생들의 특기와 적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학생의 능력도 다면적으로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명문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와 평가의 기준도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K-POP을 세계화하고 있는 일등 공신인 BTS나 아이유 같은 가수들의 능력을 어떻게 그들의 학생 시절 성적만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제고가 명문인 것은 단지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온 학교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물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다녔던 학교라는 것도 자랑거리인 것은 분명합니다만) 바로 제고가 교육의 이념으로 내세운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펼친 구체적 실천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초대 교장인 길영희 선생의 교육 이념이기도 한 이 정신이야말로 (학생들의 성적이 우수했던 것도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제고를 명실상부한 명문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당시 금력과 권력에 좌우됐던 교육풍토를 단호히 거부하고 교육적인 면이나 학교 운영에서 결코 비리와 타협할 줄 몰랐던 그 정신이야말로 길이 평가되고 보존되어야 할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학식을 키워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양심을 지켜 부조리한 현실과 싸움으로써 국가와 민족이 도탄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은 제고 학생들에게만 유효한 가치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제고는 이 교육 이념을 학생들의 일상은 물론 졸업 이후에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라는 의미에서 무감독 고사를 통한 양심 교육을 실천해 왔습니다. 그 의미 있고 아름다운 전통은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명문의 실질적인 가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가치를 교육하고 실천하는 학교가 명문이라면, 인천의 명문이 어디 제고뿐이겠습니까. 학식의 사회적 기능과 양심의 소중함을 교육하는 모든 인천의 학교들이 명문고인 셈입니다.

 

87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 긴 세월 동안 교사, 즉 건물들과 그 교사를 품고 있는 도시도 함께 나이를 먹어왔습니다. 사람도 변하고 도시의 지형도 변해온 것입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변해온 것만은 아닙니다. 번성했던 도시의 중심부가 외곽이 되고 새로운 도심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사람도 인심도 교육의 현실도 변해왔습니다. 제고 역시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홀로 의구(依舊)할 수 없었습니다.

 

한때 휘황했던 명문고라는 명성은 김광규 시인의 시구처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평준화 이후, 학교 간 학력의 편차는 많이 줄었으니 차치하더라도 학교를 지탱하는 근간인 학생 수의 격감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교육청은 교육청 대로, 동문들은 동문들 대로, 근처 상인들은 상인들 대로, 걱정의 종류와 농도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모두 한결같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앞서 저는 명문고의 기준을 해당 학교의 교육 이념과 그것의 실천에서 찾은 바 있습니다. 이 말은 명문의 진정한 가치는 지역과 건물이라는 물리적 조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서울대가 동숭동에 있을 때만 명문대이고 관악산 자락 밑으로 이사했다고 그 명문의 가치와 위상이 훼손된 게 아니지 않듯 말입니다.

 

제고의 경우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폐교를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명문의 가치는 확대 보존하고 변화된 상황에 걸맞은 실제적 현실은 받아들이자는 계획입니다. 저는 그것이 이전 제고의 명망과 해당 지역 상인을 포함한 주민들이 상생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제고가 이전하면 그 자리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꿈이 자랄 수 있는 진로교육원과 교육연수원 분원, 인천형 미래학교 모델인 상상공유캠퍼스, 어린이집 등 교육 기관이 들어서고 생태숲이 조성될 예정입니다. 학생들은 이곳을 통해 자유학기제, 방과 후 학습 활동 등 체험학습을 통해 삶의 힘을 길러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각각의 단위들은 제고의 교육 이념이자 공교육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가치들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명문의 광휘를 이어갈 것입니다. 주민들에게는 문턱이 낮은 열린 공원의 역할도 수행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구도심만이 갖는 고유한 삶의 정취는 물론 지역의 위상이 아울러 높아지면서 주민들의 지역에 대한 애향심도 함께 높아지리라 확신합니다. 제고는 제고 대로 여건을 개선하고, 원도심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도 더 좋은 교육 여건을 제공함으로써 상생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고 이전을 추진하게 된 정책의 핵심입니다.

 

인천고와 인천기계공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천고는 고종황제 칙령 1호로 만들어진 학교입니다. 인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인천고는 봉건주의 체제하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만들어진, 오늘날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일종의 혁신학교였습니다. 또 하나의 명문고인 인고가 앞으로 나가야 할 교육의 방향도 개교 이념과 성격에 걸맞은 혁신적인 방향이어야겠지요. 인고는 지역사회에서 야구로도 유명하지만, 상공인의 기반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지역사회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고를 명문고 인고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역사이자 가치겠지요.

 

인천기계공고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힘차게 추동했던 수많은 인재를 양성한 산업 영재 양성의 산실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쯤에 기계공고 동문회에서 주최한 연말 송년 음악회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받은 감동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음악회가 시작되자 여든 살의 노구에 악기를 들고 무대에 오른 10회 졸업생 선배와 현재 재학 중인 17세 후배를 포함한 50~60명의 선후배가 함께 공연했는데, 그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전문 음악인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협연은 세상 그 어느 뮤지션들의 협연보다도 아름답고 장엄한 선율로 관객을 압도했습니다.

 

수십 명의 선후배 동문들이 하나가 되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 저는 이런 모습이 앞서 말한 기계공고가 축적해 온 고유의 역량과 업적에 더해져 인천기계공고의 오늘을 있게 한 또 다른 저력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문의 향기는 고색창연한 건물이나 한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며 다양한 층위에서 확산하고 확대되는 가치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술로서 교감하고 소통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교육의 또 다른 모습입니까.

 

우리 교육청에서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교육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백교 백색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각각의 학교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 교육이 이루어지는, 신명 나는 교육 현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고교학점제를 비롯한 일반고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사업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학교가 뚜렷한 개성을 갖는 새로운 명문이 되도록 하는 교육,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살려 삶의 힘을 길러가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이것이 인천교육청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입니다.

 

이제 애초의 문제로 돌아가서 말씀드리면, 제고 이전으로 인한 교육 수급의 문제나 지역개발로 인해 늘어나는 학생의 증가와 교육 수요 문제는 광성고, 선인고, 동산고 등 기존 학교의 교육 여건 개선을 통해 해결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지역주민들과 제고 동문회, 교육계와 인천 시민사회,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들을 경청하고 수렴하는 절차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인천교육의 미래는 교육청이 단독으로 열어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모든 층위의 제언과 비판을 토대로 더불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믿고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팍팍해진 현실 속에서도 어김없이 봄은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이제 머잖아 겨울잠에서 깨어난 꽃들로 세상은 그만큼 환해지겠지요. 그러나 진정한 봄의 아름다움은 교정을 가득 메운 학생들의 얼굴에 천진한 웃음꽃이 가득 피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청에서도 학생과 교육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철저한 방역은 물론 삶의 힘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게 있을 수 있겠지요. 의원님들의 제안과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늘 마음과 귀를 열고 모든 고언을 경청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질책 부탁드립니다. 긴 시간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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