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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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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술판의 사회학과 술값 계산의 법칙

달빛사랑 2020. 7. 19. 21:27

어제 후배들의 술자리 뒷얘기가 페북과 밴드 등에 올라와 있어 읽어보니 어제의 술자리가 매우 거하고 요란한 술자리였나 보다. 사진을 보니 안주는 민어회였다. ‘요즘 민어값이 장난이 아닐 텐데, 후배들이 제법 통 크게 벌였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요즘 모두가 형편이 어려울 땐데 두부김치에 소주 정도를 마실 일이지 민어회는 과했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후배도 있었다.

 

그 후배는 특히 생활의 어려움을 자주 SNS에 올리곤 하는데, 지역 신문사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실제로도 매우 어려운 처지인 게 사실이다. 장성한 아들 둘과 어머니를 챙겨야 하고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아내에게도 일정한 생활비를 송금해야 하는 처지다. 지역 신문사의 월급이야 뻔한데 지출해야 할 곳이 많으니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작가회의 집행부 중 나이가 많은 선배급이다 보니 뒤풀이 비용을 갹출할 때 모르쇠 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자존심도 무척 강한 친구다. 그 형편을 나는 안다.

 

한국 사회에서는 선배가 으레 술값을 계산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에게는 단 돈 만 원의 술값조차 만만한 일이 아닐 때가 잦다. 오래전 그와 술 마시고 헤어질 때, 처지가 어려운 듯 보여 택시비를 줬더니 “아, 형, 택시비는 저도 있어요.” 하며 사양하던 그가 생각난다. 그것은 아마도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절하는 그에게 애써 강권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에게는 어제 나온 술값의 N분의 1조차 버거웠을 것이다. 눈치 없는 후배들은 동등한 금액의 부담만을 지우는 게 공평한 것이고 가난한 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리 넉넉하진 않지만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대체로 술값을 계산하는 편이다. 물론 내 선배들 역시 나와의 술자리에서는 늘 그들이 술값을 계산한다. 가끔은 ‘시인에게 술 떨어지면 매력도 없어진다’는 다소 근거 없는 이유를 대며 미리 술값을 넉넉히 계산해 놓고 가는데, 나는 그것을 후배들의 술값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처럼 선배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다. 후배라고 다 어렵고 선배라고 모두 넉넉하란 법이 없는데도 그놈의 ‘선배 술값 계산의 법칙’은 한결같다.

 

어제 올라온 글을 읽으며 신문사 후배의 처지가 마음에 걸려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맘이 불편했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후배들에게 원 없이 술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음에 만나면 소고기라도 사줘야겠다. “힘내라(자)!”라고 서로를 응원하는, 두 가난한 작가의 애잔하지만 정감있게 아름다운 술자리를 한번 벌여야겠다. 후배야,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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