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술판의 사회학과 술값 계산의 법칙 본문
어제 후배들의 술자리 뒷얘기가 페북과 밴드 등에 올라와 있어 읽어보니 어제의 술자리가 매우 거하고 요란한 술자리였나 보다. 사진을 보니 안주는 민어회였다. ‘요즘 민어값이 장난이 아닐 텐데, 후배들이 제법 통 크게 벌였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요즘 모두가 형편이 어려울 땐데 두부김치에 소주 정도를 마실 일이지 민어회는 과했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후배도 있었다.
그 후배는 특히 생활의 어려움을 자주 SNS에 올리곤 하는데, 지역 신문사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실제로도 매우 어려운 처지인 게 사실이다. 장성한 아들 둘과 어머니를 챙겨야 하고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아내에게도 일정한 생활비를 송금해야 하는 처지다. 지역 신문사의 월급이야 뻔한데 지출해야 할 곳이 많으니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작가회의 집행부 중 나이가 많은 선배급이다 보니 뒤풀이 비용을 갹출할 때 모르쇠 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자존심도 무척 강한 친구다. 그 형편을 나는 안다.
한국 사회에서는 선배가 으레 술값을 계산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에게는 단 돈 만 원의 술값조차 만만한 일이 아닐 때가 잦다. 오래전 그와 술 마시고 헤어질 때, 처지가 어려운 듯 보여 택시비를 줬더니 “아, 형, 택시비는 저도 있어요.” 하며 사양하던 그가 생각난다. 그것은 아마도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절하는 그에게 애써 강권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에게는 어제 나온 술값의 N분의 1조차 버거웠을 것이다. 눈치 없는 후배들은 동등한 금액의 부담만을 지우는 게 공평한 것이고 가난한 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리 넉넉하진 않지만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대체로 술값을 계산하는 편이다. 물론 내 선배들 역시 나와의 술자리에서는 늘 그들이 술값을 계산한다. 가끔은 ‘시인에게 술 떨어지면 매력도 없어진다’는 다소 근거 없는 이유를 대며 미리 술값을 넉넉히 계산해 놓고 가는데, 나는 그것을 후배들의 술값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처럼 선배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다. 후배라고 다 어렵고 선배라고 모두 넉넉하란 법이 없는데도 그놈의 ‘선배 술값 계산의 법칙’은 한결같다.
어제 올라온 글을 읽으며 신문사 후배의 처지가 마음에 걸려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맘이 불편했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후배들에게 원 없이 술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음에 만나면 소고기라도 사줘야겠다. “힘내라(자)!”라고 서로를 응원하는, 두 가난한 작가의 애잔하지만 정감있게 아름다운 술자리를 한번 벌여야겠다. 후배야, 기다려라.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모 서류 접수 (0) | 2020.07.21 |
---|---|
바람의 내력, 혹은 불면의 이력 (0) | 2020.07.20 |
잦은 모임 참석러(er)의 변명 (0) | 2020.07.18 |
전태일 열사 50주기 인천문화예술추진위 발족식 (0) | 2020.07.17 |
평화도시인천 스토리텔링 중간 보고회 (0) | 2020.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