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나에게 있어 영화를 보는 일과 술 마시는 일의 의미 본문
가끔 서너 달씩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후배들이 부럽다. 그들이 찾는 이국의 관광지나 유서 깊은 사적지 등에 관심이 많아 부러운 것은 아니고 그렇듯 서너 달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운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경제적인 여유도 없을뿐더러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노모가 계시기 때문에 서너 달의 여행은커녕 일주일 정도의 여행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자주 본다. 내가 가진 존재 조건의 한계를 정서적으로 상쇄시켜 줄 수 있는 유력한 매개가 바로 영화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황을 만나고 그 속의 인물에 내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대리만족이나 간접경험을 하는 데는 영화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영화가 아무리 생생해도 직접 경험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리만족이란 것 역시 ‘만족’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헛헛함을 더 많이 느끼게 하는 감정의 상태이지만, 현재의 조건에서는 그나마 영화보기가 삶의 만족을 일정하게 대리해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술 마시기. 중독자처럼 혼술 또한 자주 하는 편인데 적당한 알코올이 들어간 상태가 야기하는 감정의 격동이나 신파적 정서는 팍팍한 일상에서 어느 정도의 정서적 점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맘에 맞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술자리일 경우 적어도 술판에서만큼은 그와 동류(同類)가 되어 공동의 적을 분쇄하기도 하고 같은 병을 확인하며 서로 연민해주기도 하는 정서적 연대가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자주 술자리를 갖는 편이다. 다만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그놈의 ‘적당함’의 기준이 문제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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