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들뢰즈/가타리의 '기관없는 신체'의 개념(2) 본문
유기체주의자들은 인간은 기관들을 통해서 감각하고 욕망하기 때문에 기관 없이는 욕망은 자폐증에 빠질 것이며, 기관들이 없는 신체는 곧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할 것이다. 들뢰즈/가타리가 이러한 유기체주의자들의 경고를 굳이 무시하고 기관들을 제거한 신체를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기관과 신체의 관계를 전체와 부분간의 필연적인 관계로 상정하는 유기체적인 방식의 조직에서는 신체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새로운 변용능력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체를 유기적인 큰 덩어리로 만들려고 기관들과 필연적인 관계를 상정하는 유기체를 거부하는 이유는 “유기체가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가두기” 때문이다. 즉, 들뢰즈/가타리가 보기에는 신체는 유기체에 의해서 미리 주어진 기관들로 한정되지 않는 무한한 변용능력을 생성하여야지만 자신을 재생하고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들뢰즈/가타리가 파악한 유기체는 홉스의 ‘인공신체’와 같이 자연의 신체를 인공적 외피로 가둔 것에 해당한다. 유용한 가치의 다양한 자기가치생산과 자유로운 욕망의 생성을 획일적 상품생산을 위해 계량-가능한 자본주의적 노동으로 바꾸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국가)신체가 바로 ‘인공신체’이다.
들뢰즈/가타리가 유기체주의를 거부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유기체주의적 신체에 대한 관점을 처음으로 형성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그는 국가를 신체로 비유하면서 관료, 시민, 노예, 검투사의 계급적 분할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러한 유기체주의는 사회기능주의로 계승되어 꽁트의 사회유기체론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사회유기체주의는 사회적 위계와 차별의 분리선들이 사실상 사회를 유기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점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들뢰즈/가타리는 분리차별을 은폐하는 유기체주의를 거부하고,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선 새로운 연합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러한 사회유기체주의에 대한 현실적인 반박은 스피노자의 명제, 즉 ‘신체의 모든 부분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 또는 한두 부분에 관계되는 슬픔이나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은 인간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ET 4부 정리 60)54)에서도 강조된다.
즉, 오늘날 국가는 전체를 표방하면서도 차별의 질서에 대한 극복의 문제에 대해서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 노인, 동성애자, 외국인노동자, 실업자, 노숙자 등에 대한 사회적 분리차별의 극복을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되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지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느 사회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유기체적으로 전체와 부분을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일부 기득권 세력들이 전체를 표방하는 부분으로 강건하게 남아있고, 부분을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현존하는 사회를 유기적 전체로 표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과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사회를 유기체적인 필연적 관계로 만드는 것은 국가이다. 이 국가는 부분들 간의 필연적 관계의 주체로 나타날 것이며, 부분들에게 초월적인 힘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부분과 부분들이 내재적인 변용역량에 따라 소통하고 결합하는 것 즉 민주주의의 역량에 기초할 때 신체는 기관들의 필연적 연관에 머물지 않고 감성적 실천과 소통에 기반 한 새로운 변용태를 끊임없이 생성할 것이다.
들뢰즈/가타리는 오히려 사회적인 기능적 분할인 기관들을 넘어서는 변용역량을 요청한다. 이에 따르면 노동자는 ‘노동자는 노동자다’(A=A)라는 정체성주의적인 규정을 양산하는 공장을 넘어서 사회적 현실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변용역량을 갖고 있다. 즉, 노동자는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공통성을 이룰 수 있는 주체가 될 능력을 갖고 있다. 이는 가족을 넘어선 주부나 학교를 넘어선 학생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르면 다중은 기관들 간의 필연적 연관인 국가라는 유기체 하에서 주어진 기관을 매개로 결합되는 이기적인 파편적인 부분이 아니라. 기관들 없이도 결합되어 민주주의를 수행할 역량을 갖고 있으며, 유기체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그것에 기초해서 물론 기관들도 생성되며, 부착된다. 유기체의 의미는 생성된 사회적 관계를 뒤따라가 기관화시키고 유기체의 질서를 부여하며 포획하는 장치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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