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어머님, 길병원 신경과 진료받은 날 본문

일상

어머님, 길병원 신경과 진료받은 날

달빛사랑 2012. 2. 8. 16:02

 

 3개월 만에 길병원 신경과를 찾았다. 사실 오늘 아침, 내 방문이 살짝 열리더니 전날, 술마시고 늦게 들어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어머님께서는 오늘은 네가 혼자 가서 약만 타오면 안 되겠니?”라고 말씀하시는 거였다. 약만 타오는 것은 대면진료를 하지 않고 처방전만 받기 때문에 예약시간에 맞춰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건 전적으로 나를 배려하신 말씀이란 걸 나는 안다. 사실 피곤했지만, 최근 심해지신 어머니의 오른손 떨림에 생각이 미치자 그래선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아니에요. 아직 안 늦었어요. 오늘은 어머님 상태를 의사에게 보여주고 약을 바꿔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린 후, 부리나케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지난 번 진료 때 주치의 신동진 박사는 그 동안 먹었던 약 중, 몇 개는 빼고, 몇 개는 바꿨기 때문에 손떨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940분 병원에 도착해 예약증을 카운터에 접수하고, 혈압을 잰 후,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니 이내 진료순서가 되었다.

 의사 앞에서 손을 내밀고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시고, 불편한 곳은 없냐는 의사의 질문에 겁먹은 듯, 수줍은 듯 대답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뒤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의사나 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없이 위축되고 불필요하게 공손해지신다. 의료도 서비스라면, 환자는 손님이고, 손님은 왕인데,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하기 때문일까, ‘왜 저리도 소녀처럼 주눅 드시는 건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님께서 손떨림에 대한 말씀을 의사에게 전하고 있었다. 의사는 심장내과와 공조치료를 하기 때문에 혈압이 떨어질 수 있어서 약을 바꾼 거라고 말하며, 일단 그럼 다시 애초의 약을 처방할 테니 이후 특이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내원(內院)하라는 말을 해주었다 진료가 끝나자, 역시 예의 그 90도 배꼽 인사를 의사에게 하고 난 후, 진료실을 나왔다. “봐요. 오시길 잘했죠?” 하며 약국을 향해 걸어가는데, “아니, 네가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오늘 대심방이 있는 날이기도 해서...” “엄마, 나는 괜찮아. 엄마 건강이 중요하지. 내 피곤한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효자 모드로 말씀을 드리니 어머님은 소녀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나는 사무실로 출근을 했는데, 저녁에 돌아오니 어머님께서 오른 손을 쫙 펴보이며, “봐라, , 약을 바꾸길 잘했지. 점심 때, 저녁 때 두 번 약을 먹었는데, 손을 전혀 떨지 않잖아.”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어머님은 전혀 오른손을 떨지 않으셨다. 플라시보도 좋고, 약효도 좋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어머님이 불편하지 않으시면 된 거다. 뒤돌아서 주방쪽으로 가시는 어머님을 보며, 오늘 잠자리에서 미적거리지 않고 부리나케 일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잘 한 일인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그렇다. 젊은 자식들의 병아리 눈물만큼의 배려와 인내가 부모들에게는 삶의 질을 바꿔드릴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달은 오늘이었다. 어머님 만세, 어머님의 오른 손 만세!.. 내일은 악력을 키우는 손바닥 완력기를 사다드려야겠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쁜 밤이었지...  (0) 2012.02.10
아들 고등학교 졸업식  (0) 2012.02.09
들뢰즈/가타리의 '기관없는 신체'의 개념(2)   (0) 2012.02.07
정월 대보름의 소망  (0) 2012.02.06
작은 누나의 오곡밥  (0) 2012.02.0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