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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후배들을 만나다 (5-13-화, 맑음) 본문

일상

후배들을 만나다 (5-13-화, 맑음)

달빛사랑 2025. 5. 13. 23:30

 

오랜만에 미추홀구(주안동)에 있는 일식집 ‘삼원’에서 고등학교 후배 L과 R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삼원’은 오래전에 수홍 형과도 자주 들렀었고, 친구들과도 자주 들렀던, 그 옛날의 단골집이다. 하지만 주된 활동 공간이 만수동과 구월동으로 붙박이게 되면서 주안 쪽에는 갈 일이 없어 이곳에 안 간 지 꽤 오래다.

 

오늘 어언 10여 년 만에 들렀는데, 명불허전, 음식도 분위기도 예전 그대로였다. 식당은 모름지기 주인이 바뀌어도 맛은 바뀌지 말아야 하는 법, ‘삼원’은 여전했는데, 그게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전통 대물림 음식점이란 타이틀처럼 앞으로도 이곳이 그 명맥을 유지해, 언제든 찾아가도 추억의 맛을 맛볼 수 있는 명소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오늘 자리는, 약사인 R이 마련하였다. L과 R은 모두 제물포고 2년 후배들인데, 인천문화재단 근대문학관장이었던 L은 현재 공로 연수 중이고, 수년 전에 위암을 통보받고 항암을 해왔던 R은 다행히 건강이 매우 좋아져 다시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지역 신문에 맛집 기행도 연재하며 재미있게 생활하고 있다. 그의 약사 아내와 함께 운영해 오던 약국에도 다시 나가는 걸로 알고 있다.

 

후배들이나 나나 이제 모두 60대인데, 희한한 건 고교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이를 잊게 되고 하나 같이 수다쟁이가 된다는 사실이다. 지난번에 만나 나눴던 대화를 다시 해도 재미있고, 이미 알고 있는 에피소드를 다시 풀어놔도 까르르 웃게 되는 묘한 시간을 경험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창회를 하는 모양이다. 특히 L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이니 교정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적어도 10년 이상은 된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가 있을 것인가. 심지어 L은 대학 시절, 나에게 ‘홍은동 천사’를 소개해 준 장본인이다. 물론 그녀와의 사랑은 시대의 격랑 속에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오늘 (후배들을 만나기 전) 오후 4시부터 경인일보사 8층에서 경인일보와 인천교육청이 주최한 ‘푸른 인천 글쓰기대회’ 심사를 했다. 예년 같았으면 한 시간 반이면 끝났을 심사가 담당자가 바뀌는 바람에 (일이 서툴러) 두 시간이 훌쩍 넘어도 끝날 줄을 몰랐다. 후배들에게는 늦을 수도 있다고 미리 전화는 해놓았지만, 6시 20분이 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내심 초조했다. 연신 시계를 보며 초조해하는 나를 본 (또 다른 심의위원) 김윤식 선배는 “이제 정리는 우리가 할 테니 먼저 가 봐” 했다. 너무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바로 심사장을 나오는 것도 눈치가 보여 주뼛거리고 있자, 이번에는 경인일보 이 부장이 “그래요, 형님, 이제 결과는 다 나왔고 확인만 하면 되니까 먼저 가세요” 했다. 그래서 원래는 심의위원 간 점수를 서로 확인한 후, 수상자를 선정하고 심사표 작성과 연명 사인까지 모두 마쳐야 심사 일정이 끝나는 것인데, 나는 심사표 작성과 연명 사인만 먼저 한 후 양해를 구하고 심사장을 나왔다.

 

차를 타러 가면서 L에게 “지금 떠나!” 하고 문자를 보냈다. 퇴근 시간이라서 길은 몹시 붐볐다. 결국 7시 30분이 되어서야 식당에 도착했다. 후배들은 술을 마시지 않아서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L은 문 앞에 나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직원이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가니 R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서 오세요, 형님” 하며 꾸벅 인사했다. 뒤이어 여직원은 “이제 음식 내와도 될까요?” 하고 물었고 R은 “예, 그렇게 하세요” 했다. 이미 상 위에는 먹음직한 음식들이 많았는데도 (뭔가를) 또 내온다는 걸로 보아 내가 올 때까지 주메뉴를 킵해놨던 모양이었다. 잠시후 죽이 나오고, 회가 나오고, 초밥이 나오고, 매운탕이 나왔는데, 맛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잠깐 옛날 생각이 났다. 후배들은 음료수를 마시고 나만 소주 1병 반을 마시며, 다채로운 대화를 나누다가 9시 30분쯤 식당을 나왔다. 송도 사는 L은 따로 가고 R은 만수역 우리 동네까지 나를 차로 데려다주었다.

 

그나저나 그가 대장암 투병 과정에서 의료사고로 요도를 다쳐 외출하려면 소변줄과 소변 주머니를 달고 나와야 한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워낙 외향적이고 낙천적인 친구라서 전혀 티를 내지 않아 눈치채지 못했다. 수술하긴 할 테지만, 워낙 어렵고 민감한 수술이라서 철저하게 준비 중이라고 했다. 아무쪼록 성공적인 수술을 통해 그가 하루빨리 귀찮고 힘든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그는 현재 모 인터넷 신문에 맛집 기행과 투병일지를 연재하고 있다. 오늘도 나를 보자마자 “형님, 꼭 좀 읽어봐 주세요”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그 신문은 매일 나에게도 메일로 배달되어서 그가 해당 내용을 기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사를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꼭 읽어보고 코멘트도 달아줄 생각이다. 집 앞 슈퍼에서 1.5리터 우유 한 통과 아이스크림을 샀다. 또 아이스크림이라니,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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