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너의 천연덕스러움을 사랑해 (5-15-목, 오전에 비) 본문
언제부터인가 속이 빤히 읽히는 사람들을 봐도 기분 나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와 같은 유형, 즉 자신의 솔직함 때문이 아니라 의도가 너무 강력해, 돌려 말하려는 생각과는 무관하게 속을 읽히고 마는 미숙한 인간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자주 상대하다 보면 짐짓 모르는 체하며 골려주고 싶은, 고약한 악취미가 생기거나 상대의 말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기기 때문이다.❚오늘 십수 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 S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화 초반에 잠깐 “잘 지냈어?”와 같은, 그야말로 진부한 인사,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간 보기용 안부 묻기가 이어지다가 잠시 후 전화를 건 본래의 목적에 해당하는 말이 나왔다. “이번 토요일, 우리 딸이 결혼해”. 그런데 의외였던 건, 속으로 ‘그거였어?’ 하고 생각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비웃음이 아닌 정말 유쾌한 웃음이었다. 믿을 수 있는가? 이런 뻔한 의도의 전화를 받고는 유쾌한 웃음이 나왔다는 게?❚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나는 S가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만약 앞에 있었다면 폭 안아주었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남을 속여 먹는 사람보다 이처럼 속이 빤히 읽히도록 미숙하게 의도를 드러내는 사람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래서 일부러 오래 통화했다. 정말 S와 그 주변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S는 일면 제비족이다. 사교춤을 얼마나 잘 추는지, 그가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 들렀을 때, 단신의 그가 플로어 위를 날아다니며 지르박이나 차차차, 자이브나 탱고를 추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그 춤으로 홀어머니를 공양했고, 동생들을 공부시켰다.❚그런 S가 십수 년 만에 전화해서 전혀 쪽팔려하지도 않고,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우리 딸 결혼해”라는 말을 던졌을 때, 나는 고맙기까지 했다. 충청도 표현으로 ‘경우 있는’ 놈들은 대개 이럴 때 속 보인다고 절대 연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 친구 S는 통념을 깨고, 매우 ‘경우 없게’도 십수 년의 세월을 한달음에 뛰어넘고는 결혼식 참석을 요구한 것이다. 얼마나 뻔뻔한가, 아니 얼마나 당당한가? 하여, 나는 친구의 이 예상치 못한 뻔뻔함을 딸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해 주기로 마음먹었다.❚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인생은 참 재미있다니까. 우물 밖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제법 넓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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