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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세월호 추모문화제❚탄핵 축하 모임 (4-12-토, 비와 진눈깨비) 본문

일상

세월호 추모문화제❚탄핵 축하 모임 (4-12-토, 비와 진눈깨비)

달빛사랑 2025. 4. 12. 23:13

 

세월호 참사 11주기 추모제는 인천시청 1층 로비에서 진행되었다. 밖에서 진행하다 비가 내려 실내로 들어온 게 아니라 비가 올 거라는 예보에 주최 측에서는 애초부터 시청 현관에 무대를 설치했다. 시작 30분 전쯤 현장에 도착했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큐시트를 손에 들고 분주하게 오가는 은진을 만났다. 이번 행사의 총감독을 맡은 모양이었다. 나를 발견한 은진은 “어, 형, 잘 지냈어요?” 하며 다가와 포옹했다. 작년 여름 만났을 때보다 조금 마른 것 같았다. “정혁이랑 같이 안 왔어?” 하고 내가 묻자 “따로 오긴 했는데, 아마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사람들과 인사하고, 참여 프로그램 부스에서 책갈피도 만들고, 만보기로 2분 동안 416걸음을 걷기도 했다.

 

식이 시작될 때쯤 세월호 참사 국민 대책 회의 공동 운영위원장이자 인권재단 ‘사람’의 상임이사인 박래군 형을 만났다. 그는 대학 시절 문학회 선배이기도 하다. 동생은 숭실대 재학 중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주장하며 분신 사망한 박래전 열사다. 래전이는 내 친구였다. 소설가가 꿈이었던 형은 동생의 사망 이후, 민가협, 유가협을 거쳐 지금까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의 삶을 한결같이 살아오고 있다.

 

행사는 꼬박 90분 동안 진행되었다. 늘 그렇지만, 프로그램도 출연진도 너무 익숙했다. 맛은 없지만, 의리 때문에 가게 되는 단골 술집의 안주 같은 공연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빼먹지 않고 행사를 치르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자꾸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사를 마치고 나는 은진 내외, 래군 형과 함께 차를 시청 주차장에 놓아두고 빗속을 걸어서 뒤풀이 장소인 갈매기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다행히 다섯 명이 앉을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저만치서 나를 본 혁재와 은준이가 다가와 인사했다. 혁재 또한 은진과 정혁을 잘 알고 있어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 자리에서 한참 술 마셨다. 손병걸 시인과 대화하던 은준은 손 시인이 노래패 ‘반격’ 일행들과 합류하자, 자신의 술잔을 들고 우리 자리로 왔다.

 

갈매기 술자리는 세월호 추모제 뒤풀이뿐만 아니라 윤석열 탄핵 축하 파티를 겸한 자리여서 사회자인 민주노총 사무처장 미영은 테이블마다 나와서 자기소개하고 소감 한 마디씩 해줄 것을 요구했다. 우리 자리에서는 내가 앞으로 나가 래군 형과 은진, 혁재를 소개하고, 소감을 말했다. 대충 요약하면 ‘예술가를 자꾸만 거리로 불러내는 정권은 부조리한 정권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우리 예술가들은 시민과 함께 부조리에 맞서 각자의 예술적 무기로 저항할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래군 형은 원고 쓸 게 있어서, 그리고 은진 내외는 집이 멀어 먼저 일어섰고, 혁재는 간석동 카페 ‘산’으로 연주해 주러 갔으며, 은준과 나는 9시 조금 넘어 2차 가기 위해 갈매기를 나왔다. 인천집 앞을 지나갈 때, 안에서 한 외국인 예술가와 술 마시던 후배 설치미술가 이탈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와 아는 체했다. 결국 탈이 일행과 합류하여 소주를 마시다 10시쯤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생맥주 한 잔을 마신 후,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나 술집을 나왔다. 탈이가 따라 나와 근초 편의점에서 딸기를 사서 나에게 건넸다.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딸기를 들고 전철역까지 걸어오면서 괜스레 마음이 푸근해졌다.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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