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좋은 사람들과 오찬 (2-10-월, 맑음) 본문

일상

좋은 사람들과 오찬 (2-10-월, 맑음)

달빛사랑 2025. 2. 10. 21:22

 

얼마 전 시모 초상이 났을 때, 마음을 보태줘 고맙다며 비서실 주모 비서관이 점심을 샀다. 교육청 부서 회식 때 자주 가는 해남수산에서 주 비서관, 특보 3명, 전 비서실장 박까지 5명이 회 정식을 먹었다. 평소에 비해 과한 수준으로 점심을 먹은 것이다. 다만 오늘따라 홀서빙하는 직원이 한 명밖에 없어서 코스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제때 나오지 않아 대접하는 주 비서관을 자주 민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정도의 ‘덜걱거림’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생선회는 모두 싱싱했으나 해산물은 다른 때보다 오늘 덜 싱싱했다. 특히 가리비와 멍게가 그랬고, 해삼도 꼬들꼬들함이 덜했다.

 

오늘 만난 박 실장은 살이 약간 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역시 오늘도 손자 손녀들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나이 들어 천방지축 발랄한 손자들을 보는 일이 힘에 부치지만, 귀여운 손자들의 재롱을 보고 있으면 그 모든 힘든 일을 잊게 된다며 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손자녀들의 동영상과 사진을 보여주었다.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춤을 추는 손녀의 영상과 눈밭을 뒹굴며 애국가를 부르는 네 살 손자의 영상을 보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왔다. 만날 때마다 박 실장이 ‘손자 바보’가 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횟집을 나와 근처 카페에 들어가 나와 보운 형은 늘 그렇듯 라테를 마셨고 나머지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주 비서관이 함께 먹을 과자도 주문했다. 분명 횟집을 나올 때는 배가 불러 더 이상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단 걸 먹으니 또 입에서 받았다. 음식은 먹는 배가 따로 있다는 말이 맞나 보다. 밥 먹는 배, 회 먹는 배, 빵 먹는 배, 과일 먹는 배, 술 먹는 배, 냉면 먹는 배 등등 여러 배가 있어 과식하도록 유혹하는 거지. 먹는 유혹만큼 강력한 것도 드물다. 카페를 나와 박은 귀가하고 나머지는 점심시간이 지난 1시 40분쯤 귀청했다. 좋은 사람들과 식사하는 일은 즐겁다.

 

 

카페에서 커피 마실 때 후배 시인 D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알고 보니 요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선거가 (3월 4일부터 모바일 투표, 3월 8일 현장 투표) 임박해서 선거운동 중이었다. 그는 후보로 나온 송경동 시인을 지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전 대전작가회의 K에게서도 전화가 왔었는데 (받지는 못했지만) 그 전화 역시 선거 관련 전화였을 것이다. K는 오늘도 퇴근 무렵 전화해서는 “형님에게 큰걸 부탁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지나치게 강성이라며 나를 꺼리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데, 그들에게 제 비전과 정책을 확인한 후 냉정하게 판단해 달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사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편견 때문에 그를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K의 성실성을 안다. 하지만 그와 대결하는 송경동 시인도 내가 사랑하는 후배라서 그를 대놓고 지지한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 이거 참 결이 비슷한 친구들이 맞붙었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페어플레이하도록 하고, 선거가 끝나고 후유증이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 두 사람 다 훌륭한 재목(材木)인 걸 나는 아는데, 괜스레 선거 끝나고 척을 지게 되면 안 되잖아. 걱정되는 건 그거야”라고 말했더니, K는 “경동이랑 나랑은 그런 일 절대 없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했다. 아끼는 두 후배가 자신들의 말대로 정당하게 정책과 비전으로 대결하고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다만, 선거가 과열되면 당선에 급급한 나머지 애초의 약속과는 달리 비겁한 행동도 서슴없이 하게 만드는 게 자본주의 선거 메커니즘이라는 게 자꾸 맘에 걸린다. 선거는 두 사람만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 뒤에 있는 다수의 사람이 함께 싸우는 전투이다. 후보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대변하는, 그야말로 대리자일 뿐이다. 그가 하고 싶은 일과 그를 지지하는 그룹인 ‘그들’의 야심이 부딪치면 후보가 바뀌거나 거부될 수도 있는 게 자본주의 선거다. 그만큼 선거는 비정한 법이다. 다행히 우리는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는 진보적 문학단체인 한국작가회의의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아무쪼록 두 후배와 그들을 지지하는 그룹들이 진보적 문학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선거 내내 잃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