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분주했던 주말 (11-30-토, 흐리고 잠깐 비) 본문
여러 개의 모임과 행사가 하루에 치러지다 보니 술자리 빼고는 '행사의 주인공들'에게 얼굴 도장 찍고 오기에 급급한 하루였다. 그러다 보니 방문했다는 뿌듯함보다 '이럴 바엔 차라리 안 가는 게 나은 거 아니야' 하는 자괴감이 때때로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행사 주인공이 "참석해 줘서 고마워요" 하며 환하게 웃고 악수를 건네올 때는 '그래, 오길 잘했어' 하고 안도한다. 행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의무감에서 비롯한) 형식적인 방문이라도 안 온 것보다는 온 게 백 번 낫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오늘 참석한 작가회의 모임도 그렇고 오랜만에 개인전을 개최한 서은미 작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특히 서은미 작가는 그동안 소멸하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그것들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천착, 보존하는 아카이브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었지만, 그녀에게도 개인적인 작업의 열망이 있었을 게 분명한데 매번 힘든 길을 가며 공공의 예술적 자산으로 귀속될 작업에 집중하는 그녀를 보며 감사와 존경의 마음 한편으로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아쉽긴 하지만(예술적 성취의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더 자주 보고 싶었다는 의미에서의 아쉬움), 초보 농부이자 섬 사람인 사진작가 서은미 개인의 삶과 모습이 투영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 더욱 자주 그녀의 작가적 열정과 고민이 포착한 멋진 사진들을 전시 현장에서 만나고 싶다.
1시에 근대문학관에서 시작한 작가회의 행사가 생각보다 길어져 중간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음 행선지(서은미 작가 사진전이 열리는 '프로젝트룸 신포')가 근대문학관에서 3분 거리에 있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서 작가 전시 오픈 행사에서는 사회를 맡은 후배 철원이가 즉석에서 '축하의 말'을 부탁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예정에 없던 축사를 했다. (짜식, 미리 언질이라도 주지) 서 작가가 인품이 좋다 보니 참석자들도 무척 많았다. 오랜만에 영욱, 재형이 형, 바텀라인 정선, 작가 서우, 다인아트 미경 등등 반가운 지인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뒤풀이(중국집 '풍미')는 참석하지 못했다.
전시장을 나와서 세 번째 일정인 '제고 26회 산우회 송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신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선학동으로 이동했다. 신포동에서 수인선을 탄 건 처음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서너 명의 친구들이 선착해서 대화 중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먹고 마시며 수다 떠니 기분이 몽골몽골 해졌다. 함흥갈비에서 식사와 1차를 마친 일행은 2차 장소를 찾다가 결국 실패하고 (주말에 40여 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그것도 예약 없이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 결국 아내들은 근처 카페에서, 남자들은 맞은 편 맥줏집에서 따로 2차를 했다.
9시 30분쯤, 친구들과 헤어졌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 친구들은 따로 모여 송도 달빛공원으로 3차를 갔고, 나는 함께 가자는 친구들의 집요한 권유를 간신히 떨치고 전철 타고 돌아왔다. 무언가 대단한 통과의례를 힘겹게 통과하고 난 느낌이다.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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