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고비를 맞고 있는 가을 (10-29-화, 흐림) 본문
새벽에 잠을 설쳤다. 뒤척이다가 5시쯤 다시 잠이 들었으나 깊은 잠은 아니어서 잠결에도 틀어놓은 유튜브 음악 소리가 귀에 들렸다. 깨어 있던 건 분명 아니었다. 꿈을 꾸었으니까. 다만 그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서 꿈을 꾸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구별할 수 없었다. 꿈속에서 꿈 밖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꿈 밖에서 꿈속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 이건 꿈속이군’ 하고 손을 더듬으면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가 손에 잡혔다. 꿈 밖에서 ‘이제 정말 잠이 들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면 돌아가신 엄마가 거실에 앉아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면서도 머리가 무척 무겁다고 느꼈다. 그렇게 가수면 상태로 잠을 자다가 7시 30분쯤 잠에서 깼다. 자리에 누운 채 매트 위에서 발끝 부딪치기 200회를 하고 두 손을 위로 뻗어 스트레칭을 한 후 일어났더니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거실로 나왔을 때, 보일러가 돌아가질 않은 걸 보면 아직 설정해 놓은 21도 아래로 떨어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썰렁하다가 느껴 보일러 온도조절기를 보니 (거실의) 현재 온도와 (설정해 놓은) 희망 온도가 21도로 똑같았다. 22도로 희망 온도를 올리려다가 그만두었다. 엄마 생전에는 엄마 춥지 말라고 23도까지 올리고 살았지만, 지금 나에게는 21도가 생활하기 딱 좋은 온도다. 심지어 반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지내도 전혀 춥지 않다. 에너지와 가스비도 절약하고 추위에 대한 저항력도 줄여주고, 낮은 온도로 사는 게 여러모로 좋다. 아무튼 잠을 설친 것치고는 꽤 괜찮은 컨디션이었다. 주방에 가서 단백질 분말과 브로콜리, 구기자 분말을 물에 타서 마시고 사과 반 개를 먹은 후 실내 자전거를 40분 탔다. 출근할 때는 무얼 입고 출근할지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후드티에 카디건을 받쳐 입었다. 카디건은 더우면 벗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점심은 보운 형과 둘이 양평해장국을 먹었다. 희한하게 이걸 먹으면 오후까지 든든하다. 소의 내장이 들어있어 그런지 뭔가 고기를 먹은 듯한 느낌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순댓국에도 돼지고기 내장과 살코기가 들어가 있는 셈인데, 순댓국보다 양(소의 첫 번째 위)과 선지가 들어간 양평해장국이 먹고 나면 훨씬 든든하다. 주관적인 느낌이겠지만, 나는 그렇다. 그래서 양평해장국을 먹은 날에는 저녁 먹을 때까지 주전부리를 먹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청사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한 후 보운 형은 ‘세계를 품은 인천교육 한마당’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송도컨벤시아에 갔고 김영철 마을 교육 특보는 울산으로 출장을 가 오후 내내 나 혼자 사무실을 지켰다. 저녁이 될수록 구름은 많아지고 가끔 빗방울 떨어졌지만, 가랑비조차 되지 못했다. 어두컴컴해지면서 책상 밑의 발이 시렸다. 가을은 또 막 고비를 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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