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카페 '산'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10-15-화, 맑음) 본문
정말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어제 우연히 페북에서 카페 ‘산’의 주인 성식이가 올린 포스팅을 봤고, 그 글에 “잘 지내지? 조만간 한번 들를게”라는 의례적인 안부 댓글을 달았던 것인데, 그 댓글을 본 성식이가 다시 또 “형, 내일 저녁에 카페에서 혁재랑 만나기로 했는데, 형도 오세요.”라는 댓글을 달았던 거다. 일단 “시간 확인해 보고”라고 대답하고는 오늘 오후 퇴근 전에 혁재에게 전화했던 것이다. 신호음 두 번 만에 전화를 받은 혁재는 “맞아요. 로미가 며칠 전 생일이었는데, 성식 형이 그냥 넘어가기 뭐 하다며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해서요. 형도 6시 30분까지 카페로 오세요” 했다. 퇴근 후 집에 들러 시집 세 권(두 권은 성식과 혁재 친구 성국에게 줄 나의 시집이고 한 권은 로미 생일 선물로 줄 최승자의 시집) 챙겨 들고 카페로 갔다. 카페에 도착했을 때 주인인 성식 커플과 로미만 앉아 있었다. 혁재와 성국은 우리(성식 커플, 나와 로미)가 식당에 먼저 가서 고기를 굽고 있을 때 차례로 도착했다.
그렇게 성식이가 구워주는 삼겹살과 소주로 1차를 하고, 모두 카페로 이동해 성식이가 제공하는 다양한 술(와인과 증류 소주인 ‘화’)들을 마셨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고 카페에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성식은 즉석 공연을 시작했다. 록커인 성국이가 노래했고 성식과 혁재가 세션이 되어 기타와 하모니카를 각각 연주했다. 세 사람의 합이 너무 잘 맞았다. 한두 번 맞춰 본 게 아닌 듯했다. 혁재가 갈매기보다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특히 록 가수 성국이의 노래 실력에 깜짝 놀랐다. 그는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 두어 곡과 김광석의 노래들을 불렀는데, 그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손님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내 신청곡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었는데, 호소력 짙은 성국의 목소리로 들으니 김광석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듣기 좋았다.
그렇게 가을밤의 흥취를 맘껏 즐기다가 취기가 오는 것 같아 먼저 일어섰다. 카페를 나오기 전, 로미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10만 원을 선결제해주었다. 성식이는 “아, 형, 나는 시인과 가수에게는 술값 받지 않아요” 하며 극구 사양했으나 “나 말고 로미 술값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둬” 하며 강하게 요구했더니 “하, 이거 참, 알았어요, 그럼. 언제든지 술 드시고 싶을 때 편하게 들르세요” 하며 마지못해 카드를 받아 들었다. 애초에는 버스 타고 가거나 걸어갈 생각이었으나 혁재가 따라 나와서 택시를 잡아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택시 타고 귀가했다. 집 근처에 이런 카페가 있다는 게 행운인지 불행인지(자주 술 마시게 될 테니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사랑하는 후배들도 만나고 좋은 음악도 즐길 수 있었던 꽤 괜찮은 가을밤이었다. 밤바람도 참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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