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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모든 게 뜻대로 되지는 않아 (10-10-목, 맑음) 본문

일상

모든 게 뜻대로 되지는 않아 (10-10-목, 맑음)

달빛사랑 2024. 10. 10. 22:38

 

여름내 작업했던 자서전 발간 사업은 의뢰인과 출판사 간의 이견으로 인해 결국 무산될 것 같다. 의뢰인은 계속 진행하고 싶어 하지만, 다인 윤 대표가 매우 완강하게 작업을 거부하고 있어 진행이 재개될지는 미지수다. 둘 사이에 오고 간 카카오톡 문자를 양쪽으로부터 모두 전해받아 읽고 난 후, 나는 둘 사이의 화해가 더욱 요원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발간 비용에 관한 이견으로 시작됐던 ‘문자 전쟁’은 점점 감정싸움으로 변해 갔고, 결국 의뢰인은 듣기에 따라 인신공격에 해당할 수도 있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했다. 

 

특히 의뢰인의 ‘영세한 출판사’ 운운은 윤 대표의 자존심을 무척 심하게 훼손한 말이었다. 다인은 20년 이상 건실하게 출판 사업을 해온 중견 출판사이고, 그간 국회의원이나 기업인의 자서전, 신문사와 연계한 기획 출판, 대학교수들의 연구서, 교육청의 각종 출판물 등 발간해 왔다. 책을 잘 만든다고 소문도 자자했고, 무엇보다 주머니가 가벼운 NGO 단체들의 간행물을 저가로 발간해 주기도 해 지역에서의 매우 좋다. 그런 다인에게 의뢰인은 “비용이 이렇게 비싼 줄 알았다면 다인처럼 영세한 출판사에 의뢰하지 않았을 겁니다”라는 발언은, 다른 이유를 다 차치하고서라도 윤 대표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나중에 나와 통화할 때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변명했지만, 문자가 엄연히 남아 있는 이상 발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의뢰인은 어디서 들었는지 책 발간 비용을 300~400만 원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 금액은 교정을 본 내 수고비로도 모자라는 금액이다. 백번 양보해 깎아준다 해도 이건 기획과 교정, 윤문 비용이지 제작비가 아니다. 책 제작비는 지질, 판형, 인쇄 부수, 컬러 유무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그 비용이 달라진다. 특히 컬러가 들어간 경우, 제작비(인쇄비)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따라서 1천 권을 기준으로 한다면 교정비 3~4백만 원 빼고도 약 6~700만 원 이상의 인쇄비가 들어가, 결국 총출판비는 1천만 원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의뢰인은 총출판비를 3~400만 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가 그런 금액을 내세우는 근거는 최근 자신의 친구가 수필집을 냈는데, 제작비가 3백 원 들었다는 것이다.

 

답답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의뢰인에게 출판 메커니즘에 관해 설명해 주었지만, 의뢰인은 당최 들을 생각이 없고, 자기주장만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 주는 문자가 오고 갔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싸움에) 여름내 작업한 나의 수고가 헛수고가 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윤 대표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에겐 연말까지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자비로 나의 작업비를 지급하겠다고 말했고, 의뢰인에게는 나의 편집 문서를 폐기하고 절대 사용하지 말 것과, 앞으로 새로운 출판사와 계약하려면 내가 손 보기 전의 원본을 가지고 계약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윤 대표다운 결론이었다. 교육감이 자신의 선배라고 소개하지만 않았다면 나도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 양반이 이렇게 꽉 막힌 사람인 줄 알았다면 더더욱!

 

의뢰인은 원고가 마감되고 교정이 끝나 편집에 들어간 이후에도 수시로 새로운 원고를 보내 교정을 부탁하고 (이미 마감된 원고에) 첨가, 편집 달라고 떼를 써서 나와 출판사를 당황하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 이 양반의 성격을 간파했어야 하는데…… 아무튼 노인들과 여러 번 일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또 하나 배웠다. 교육비가 제법 비싸긴 했지만.

 

그래도 어른이니 매듭을 명확하게 짓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 출근한 후에 의뢰인에게 전화했다. 아니나 다를까, 의뢰인은 구구절절 윤 대표를 설득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나도 손해가 크지만 감수할 테니 선생님도 새로운 출판사 찾아서 다시 출판을 이어가시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윤 대표에게 연락했다. 윤 대표는 단호했다. 나는 그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해주었다. 대신 윤 대표에게도 다시 한번 의뢰인에게 연락해서 확실한 의사전달을 통해 매듭을 지어주라고 말했다. 그러마고 했다.

 

오후, 의뢰인의 문자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피곤했지만, 진지하게 답글을 보내주었다. 그도 연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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