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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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폭염주의보 내려진 주말 (8-3-토, 맑음)

달빛사랑 2024. 8. 3. 22:24

 

오전 9시쯤 기온은 이미 30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역시나 오전 10시쯤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테라스 화초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안쓰러워서 물을 흠뻑 뿌려주었다. 집 앞 아스팔트 도로 위에 물을 뿌리면 ‘푸시식!’ 하고 김이 날 것 같았다. 점심에는 어제 장 봐온 콩국으로 콩국수를 해 먹었다. 식사 후, 1시간 동안 자전거 타고, 아버지 25주기 추모예배 자료를 준비하고 있을 때, 은준이 전화했다. 오랜만에 갈매기에서 막걸리 한잔하자며 살살 꼬드겼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의 꼬드김은 무척 집요하다. 내가 거절할 것을 대비한 멘트까지 단계별로 준비해 놓을 정도다. 사실 요즘 체중 조절 때문에 가급적 1주 1회 음주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자마자 은준이 전화한 것이다. 결국 6시쯤 은준을 만나러 갈매기에 갔다.❚갈매기에 닿았을 때 은준은 도착 전이었고, 별실 쪽에서 나오던 종우 형은 나를 보자마자 “어, 계봉 씨 오셨어요. 별실에 조구 형이 와 계시네요” 했다. “누구랑 계세요?” 하고 물은 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별실로 가서 다짜고짜 문 열고 들어가 형을 만났다. 무례해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본래 커다란 형의 눈이 더욱 똥그래졌다. 형수님과 누님(나주에 종우 형을 통해 알게 됨)도 놀라셨을 것이다. 서너 달 만에 만나는 형은 약간 몸집이 커진 것도 같았다. 형과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오니 은준이 와 있었다. 오늘따라 깔끔해 보였다. 갈매기는 오늘따라 만원이었다. 별실도 방도 홀도 손님으로 가득했다. 날이 더워 손님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술꾼들은 더위도 안 타는 모양이었다.❚ 은준과 나의 대화 주제는 대체로 시와 신앙에 관한 것이다. 특히 시인 등단을 준비 중인 은준에게는 시작(詩作)이 화두였다. 다만 내가 가장 우려하고 특히 그에게 경계시키는 것은, 그가 온전히 시에 몰두하지 못하고 시인들의 일상이나 가십에 집중하거나, 우연찮게 알게 된 시인들과의 친밀함을 다소 과장함으로써 자신의 인정욕구를 충족하려는, 그야말로 속물적인 관종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 그가 지닌 룸펜 속성과 딜레당트적 기질은 그의 주변에 많은 적대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원인이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진지하게 독서와 사색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서 선배로서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이런저런 대화하며 마시다 보니, 어느덧 막걸리를 6통이나 마셨다. 하지만 천천히 마셔서 그런지 둘 다 취하지는 않았다. 가족 모임을 마친 조구 형이 먼저 귀가하신(종우 형이 차로 집까지 모셔다드렸다) 후, 더 마시다 가라는 종우 형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다시 자리에 앉아, 한 병씩 더 마셨다. 갈매기를 나와 전철역 쪽으로 걸어가다가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밴댕이 골목 입구 한신우동집에 들러 우동을 한 그릇씩 먹고, 11시쯤 은준과 둘이서 전철 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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