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끝나지 않은 장마, 내 몫의 비를 기다리며 (07-09-일, 비) 본문

일상

끝나지 않은 장마, 내 몫의 비를 기다리며 (07-09-일, 비)

달빛사랑 2023. 7. 9. 20:29

 

오전에 자갈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거세게 비가 내려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비가 들이치는 작은 방 창문을 닫을 때는 얼굴에 튀는 빗물이 상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소나기처럼 비는 이내 그쳤다. 오후에는 잠깐 땡볕이 내리쬐기도 했으나 대체로 날은 흐렸고 바람도 불어 산책하기 좋았다. 점심 먹고 동네를 산책했다. 집 근처 공원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문일여고 앞을 지나서 남광아파트까지 갔다가 단골 가게인 오렌지 마트에서 성당 쪽으로 올라오는 미음(ㅁ) 자 동선이었다. 머신 위를 걷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언제 한 번 저 멀리 미추홀 도서관 뒷산까지 갔다 올 생각이다.

 

사람을 안 만난 지 2주가 넘어가니 편안하고 고즈넉하긴 한데, 때때로 삶이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관계와 만남도 끊으면 금단 현상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겠지. 나의 삶이란 늘 사람들 속에서 다채로웠으니까. 공복 시간을 조정해서 내일은 오랜만에 갈매기에 들러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또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으니 내일 일은 내일 가 봐야 알겠지.

 

갈매기에서 혼자 앉아 술 마실 때면 늘 "나는 왜 이 자리에 이렇듯 혼자 앉아 청승을 떨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 약간 취기가 돌면 그런 자괴감을 의도적으로 강화해서 나를 쓸쓸함의 극한으로 몰고 가곤 했는데, 그런 싸구려 감상과 비련의 주인공 코스프레가, 오히려 삭막해진 시인의 정서를 말랑말랑하게 해 준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더 쓸쓸해지려고 감정 과잉의 상태를 만들었던 것이다. 만약 눈물까지 흘릴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거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혼자 술 마시다 운 적은 없다. 적어도 갈매기에서는......

 

인생을 살면서 감옥에 갇힌 신세가 아닌 이상에는 우기(雨期)에 칩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건 날씨와 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 나에게는 일주일 정도의 우기가 남아 있는데, 나는 여전히 문 밖을 나가 사람들을 만나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 여러 모로 나답지 않은, 그래서 낯선 예순의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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