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그 젊은이들의 오후는 무슨 색이었을까? (02-06-월, 맑음) 본문
❚면접은 괴롭다. 당하는 면접도 괴롭지만,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하는 면접은 더욱 힘들다.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10명과 각각 10여분씩 대화를 나눴다. 스펙만 본다면, 누가 선발되더라도 주어진 일을 매우 훌륭하게 해낼 젊은 재원들이었다. 나는 압박 질문을 해야 하는 악역을 맡았기 때문에 '면접 학원'(요즘 재단 면접을 준비해 주는 학원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에서는 다루지 않았을 만한 원론적인 질문들을 던졌다. 확실히 응시자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변별할 수 있었다. '예술의 공공재적 성격'에 관한 질문에 관해서는 두 명 정도만 제대로 된 대답을 했을 뿐이다. 다소 놀라웠던 건 면접자 대부분이 인천의 예술가들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고작 아는 예술가라곤 최근 만나본 젊은 화가나 퍼포먼스작가가 전부였다. 외국어와 컴퓨터 능력은 뛰어나지만 제 고장 역사와 예술가에 관해서는 까막눈이라니, 한편으로 슬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서너 시간의 면접을 마치고 청에 돌아와 잠시 쉬다가 퇴근했다. 갈매기에 들러볼까 하다가 피곤해서 그만두었다.❚돌아오는 길 미장원에 들러 이발을 하려고 했는데, 미용사 선생이 너무도 힘겨운 표정을 하면서 "저기... 선생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런데 내일이나 모레 오시면 안 돼요?" 하며 사정하기에 "그럼요, 건강 잘 챙겨요. 다음에 올게요" 하고 그냥 나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리 말했을까. 마음이 아팠다. 그나마 난 단골이라서 편하니까 그런 부탁도 할 수 있었겠지. 모두 각각의 삶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오늘처럼 집이 반갑고 편한 적이 없었다. 내일은 교육감과 문화단체 대표들과의 만찬이 있다. 요즘 점점 모임에 나가기가 싫다. 늙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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