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고등학교 동창 모임, 부평 (12-09-금, 맑음) 본문

일상

고등학교 동창 모임, 부평 (12-09-금, 맑음)

달빛사랑 2022. 12. 9. 21:49

 

오후에 딸기가 왔다. 주 모 비서관의 손에 들려 정갈하게 포장된 딸기가 내 책상 앞으로 왔다. 점심 먹은 지 꽤 지나 출출했는데, 눈치도 빠르게 딸기가 왔다. 비서실장이 지인에게 받은 딸기 무리 중 한 팩인데, 어찌나 예쁘고 탐스러운지 먹어버리기 아까울 정도였다. 세척하러 화장실까지 가기가 싫어서 컵에 생수를 받은 후 그 물에 딸기를 휘휘 저어 먹었다. 냉장되었던 딸기처럼 차고 달콤했다. 씨알은 한입에 쏙 집어넣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처음에는 딱 한 개만 맛보려고 했는데 먹다 보니 자꾸만 손이 갔다. 12개씩 두 판으로 포장된 팩에서 위에 있는 딸기 한 판을 순식간에 먹었다. 12개를 먹은 거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대면서 먹었으면 마지막 딸기 이름은 가롯 유다였겠지. 저 탐스럽고 맛 좋은 딸기 24개가 나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을 것인가. 비닐하우스에서 나고 자랐을 테니 비바람 걱정은 없었겠지만, 심고 보살피고 씻고 포장하고 다시 상자에 담아 주소를 확인하고 인천으로 보내기까지 거쳐 간 손들은 한결같이 말했겠지. “하, 고놈들, 무척이나 달고 실하네.” 거쳐 거쳐서 받은 나도 “하, 고놈들 무척이나 달고 실하네.” 하고 있다.

 

웬만하면 오늘은 쉬고 싶은데, 오래전에 약속한 고등학교 동기들과의 약속이 잡혀있다. 그것도 낯선 부평에서. 몇 차례 펑크를 냈기 때문에 이번에 참석하지 않으면 아예 연락을 끊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아 가긴 가야 할 텐데, 영 내키지는 않는다. 물론 친구들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개중에 불편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더욱 그렇다. 이제는 사람이 좀 됐으려나. 하긴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는 묵은 앙금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 수요일과 금요일은 ‘교육청 가족 행복의 날’이라서 30분 일찍 퇴근한다. 말이 행복의 날이지 직원들에게 추가 근무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30분쯤 더 있다 6시쯤 퇴근할 생각이다. 전철을 타면 부평까지 30분이면 가니까 약속 시간 6시 30분에 늦지 않게 도착할 것이다. 근 1년 만에 보는 친구들도 있는데, 모두들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다. 내일은 후배 낭독극회에도 참석해야 하고 친구 전시회도 가야 하니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할 텐데, 맘대로 될는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부일식당(고깃집)에서 만나니 소주를 마실 게 분명한데……. 어떻게 되겠지. 그나마 딸기를 먹어 놔서 다행이다.

 

10명의 친구들이 만났다. 날도 그리 춥지 않고 생각보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주문하고 먹지 않은 삼겹살과 육회를 기홍이가 포장해서 내게 건네주었다. 고깃집을 나와서는 근처 맥줏집에서 2차를 했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병설이가 빨리 가자는 눈치를 보내왔다. 친구들과 헤어져 둘이서 먼저 백운역 쪽으로 걸어와 택시를 탔다. 절친 병설이가 나를 위해 택시의 동선을 우리 집 방향으로 잡아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고마운 친구.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취하지 않고 귀가한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나쁘지 않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