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맑고 바람 많은 날, 좋은 사람들 만나다 본문
날은 맑고 좋았으나 바람이 많았다. 점심에는 후배 장학사 정 모 선생이 보좌관실에 들러 함께 점심을 먹었다. 평소에도 늘 모든 사람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사람이라서 정 장학사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점심 때가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직장에서는 직원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나 역시 보좌관들끼리 함께 식사를 하고 돌아올 때 청사 주변을 산책하곤 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식사를 하려니 괜스레 눈치가 보이고 (자격지심일 뿐 누가 일부러 눈치를 주진 않는다 하지만) 팀별로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도 가끔 그런 장면이 나온다. 이를테면 왕따 직원이 혼자 회사에서 좀 떨어진 식당을 찾아 식사를 하는 장면 말이다. 직장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왕따를 당하고 있거나 성격이 괴팍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나 역시 점심시간이 많이 지났을 때 슬쩍 외출해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정 선생은 그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오늘처럼 가끔 올라와 함께 식사를 하자고 청하곤 한다. 매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오늘은 늘 가던 교육청 앞 식당가로 가지 않고 후문 쪽으로 가서 순두부백반을 먹었다. 섬세하게도 미리 예약까지 해놓아서 기다리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중앙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아는 얼굴들이 오가다 인사를 해왔다. 공원을 옆마당처럼 가진 청사라서 사계절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산책을 끝내고도 시간이 남아 늘 가는 단골 찻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돌아왔다. 차라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퇴근 후에는 갈매기에 들렀다. 목요일 마감인 칼럼 원고도 작성해 놓은 데다가 내일은 어린이날이라서 출근하지 않는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청사를 나설 때 해는 많이 남아 있었고 오후에 더욱 강해진 바람은 머리칼을 마구 헤쳐놓았다. 나쁘지 않았다. 마치 자상한 선생이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홈플러스 지날 때쯤에는 인적이 드문 공원 쪽 인도로 건너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가끔 일부러 나를 빤히 바라보는 사람이 있던 것으로 보아 나는 허밍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제법 큰소리로 들린 모양이었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갈매기에는 서너 팀의 손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부쩍 손님이 많아졌다. 내가 도착한 이후로도 계속 손님이 들어찼다. 사장은 손님도 손님이려니와 최근 자신의 딸이 4백만 원의 장학금까지 받은 터라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5월 들어 많은 것이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고 내가 아는 사람들의 상황은 점차 좋아지고 있다. 다행이다. 나의 상황도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어머니의 기도로 인해 이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지긴 했지만.....
혼자 술 마신지 1시간쯤 지났을 때 조구 형과 며칠 전 아버지를 잃은 세만 형이 도착했다. 늘 봐도 반가운 순정한 심성의 형님들. 다시 30분쯤 지나자 이번에는 혁재가 나타났다. 복권 맞은 기분이었다. 이렇듯 좋아하는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는 자주 있었지만, 거리두기와 영업 시간 제한 이후에는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은 무척 드물었다. 조구 형만 해도 엊그제 만나기 전까지는 두어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게다가 일요일에 만난 건 일부러 내가 연락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튼 너무 반가웠다. 이런 날은 평소 마시던 양보다 다소 많은 술을 마시게 되지만 기분 좋게 마시기 때문인지 희한하게 취기는 덜하다. 누군가 그랬다지. 봄밤의 1각은 천금에 값한다고... 그건 정말 맞는 말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에 맘껏 누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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