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흐리고 비, 후배들 만나다 본문
날은 아침부터 좋지 않았지만 예보를 확인하지 않아 비가 올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집에 칩거하고 있는 혁재와 연락이 닿아 평소보다 일찍 청사를 나서는데, 보슬비가 내렸다. 하늘을 보니 잠깐 내리고 그칠 비는 아닌 듯싶었다. 지하철 정거장까지 걸어가면서 후배 이재상 감독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시간이 맞아 혁재와 함께 보기로 했다. 혁재는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지만 그곳까지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신기시장 이쁜네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후의 이쁜네는 한가했다. 조금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으니 혁재가 시장 저 끝에서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늘 앉는 자리에 앉아 우럭회와 멍게를 주문했고 혁재는 막걸리 나는 소주를 마셨다. 정말 오랜만에 혁재와 함께 하는 술자리였다. 실상 나도 최근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 비 오는 오후의 술자리가 살짝 설렜다. 첫 잔을 마시고 안주가 나오자 재상이도 도착했다. 희한하게 그는 이곳의 이름만 듣고 알아서 찾아왔다. 빗줄기는 점차 굵어졌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쁜네에서 재상이와 혁재는 5병의 막걸리를 마셨고, 나는 소주 두 병을 마셨다. 나는 나의 주량을 알기에 술값을 계산해준 후 귀가하려고 했으나 술이 센 두 사람은 갈매기에 들르자고 부추겼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갈매기로 이동했다. 하지만 갈매기는 장사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출입문에는 대청소 때문에 장사를 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매기 형은 혼자서 청소 중이었다. 형수가 오미크론에 감염되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명절에도 쉬지 않는 사람이 뜬금없이 휴일도 아니고 수요일에 대청소하느라 장사를 쉰다는 게 의아했다. 실제로 봄철을 맞아 겨우내 쌓인 때를 씻어내기 위한 대청소를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휴일이 아니라 수요일이라니, 청소의 필요성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혁재는 갈매기에 들어가 기타를 들고나왔고 재상이의 후배가 한다는 근처 고깃집(‘한 점 한 점’)으로 이동했다. 키가 큰 배우 출신 사장은 영화배우처럼 잘 생겨서 놀랐다. 고깃집은 깔끔했고 고기도 맛있었다. 소고기 살치살 3인분과 소주 한 병 막걸리 두 병을 주문했다. 이미 정량을 마셨지만 고기 안주가 나오니 소주가 당겼다. 잠시 후, 혁재와 재상이는 돌아가면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술집 안은 갑작스레 공연장으로 변했다. 우리 말고 다른 한 팀이 있었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도 손뼉을 치며 호응해주었다. 후배들은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노래를 불렀는데, 자주 들어본 노래였지만 오늘은 더 듣기 좋았다. 소주 한 병을 다 마신 후 술값을 계산해 준 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따라 나와 택시를 잡아줬다. 지출 많은 하루였지만, 오랜만에 사랑하는 후배들을 만나 기분이 좋았다. 이 시국에 이렇게 낮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건 염치없는 행복일 것이다. 오늘만은 안 좋은 뉴스의 불쾌함도 선거의 후유증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은준이도 함께했으면 좋았을 텐데, 개인적인 일 때문에 영종도에 들어가 있었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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