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봄날의 잔혹사 본문
하루에도 숱하게 마주하는 죽음들인데 새삼 생각할 게 무엇이람 이를테면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조현병을 앓는 40대 남성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불을 피해 대피 중인 이웃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다섯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하는데 끔찍하다고? 중동 어디에선가는 매일 불안한 일상 위로 총탄이 날아들고 포탄이 터지고 수십 명의 아이들은 밟힌 개구리처럼 배가 터져 죽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해야 하는 어느 나라 대통령은 아이들이 수장되는 긴박한 시간에도 태평하게 잠을 자다 누군가 깨우자 억지로 일어나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고 보톡스로 엠보싱 화장지 같이 변한 얼굴의 화장을 고치고 있었는데 다섯 명쯤의 죽음이야 아무것도 아니잖아 적어도 수백 명이 한꺼번에 애먼 죽음을 당해야 비로소 죽음이 죽음답다고 여겨지는 것인데 학살이 되어야 죽음을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잠시 난만했던 꽃들은 바람 불 때마다 눈처럼 우수수 거리 위로 떨어지고 아름답게 윤색된 죽음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그렇다면 죽음의 의장도 제법 폼이 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희한하기도 하지 소멸하는 것들에게 환호하다니 그러면서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그러면서 죽음을 연민하다니 봄꽃들이 펼치는 죽음의 향연 속에는 마약 같은 마취제가 숨겨진 게 틀림없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분분한 소멸의 행렬에 환호하면서 가장 가까운 이웃들의 죽음에 무감한 눈 먼 이웃들의 환각파티 속에서 봄날은 가고 있는 거지 순장의 운명은 시나브로 다가오고 죽음 쪽에서 주검의 후보들을 선별하는 4월, 5월의 피 냄새 가득 품은 잔혹한 봄날은 가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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