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간헐적 금주 본문
오전에 민예총 사무실 들러 재단 직원들을 만났다. 얼마 전에 작성한 이사 입장문 서면동의서에 사인을 해주고 봄볕이 너무 좋아 잠깐, 백수 후배를 불러내서 낮술을 마실까, 공짜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갈까 고민했지만 결국 곧바로 귀가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다소 무미한 일상들이 더디게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주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나쁘지 않으나 현저하게 약해진 체력 때문에 술 마신 다음 날 하루는 혹독한 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멍하니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봐야만 했다.
대신 나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기력이 소진되어 가는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 오후에도 공원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승미와 효숙 누나의 전화를 받았지만 외출하지 않았다. “어머니 저녁 차려드리고 있어”라고 하자 승미는 “그럼 이후 시간은 일정이 없는 거야?” 물어왔고, 나는 “(일정이) 없지만 외출하지 않으려고 해. 요즘 금주 기간 중이거든.” 웃으며 대답했다. 전화기 너머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런 종류의 전화 통화가 참 좋다. 기분 좋게 거절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상대의 배려도 고맙고.
저녁에는 카레를 하고 감잣국을 끓여 어머니와 먹었다. 아들이 만들어 주는 것은 모두가 맛있다며 한 그릇을 너끈하게 비우시는 어머니를 보며 다시 또 기분이 좋아졌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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