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우중산행 후 주림(酒林)에 들다 본문
비가 왔으므로 망설였다. 하지만 산우회 총무 호형이는 폭풍우가 몰아쳐도 모임은 갖겠다며 모두 시간 맞춰 나오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산행을 하지 못하게 되면 등산로 입구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식사라도 하고 헤어지자는 거였다. 술자리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여느 때에 비해 일찍 잠에서 깬 나는 우산을 챙겨들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나까지 7명이 모였다. 빗방울은 집을 나설 때보다 굵어져 있었다. 우리 일행은 짧은 코스라도 타고 내려오자는 노일이의 제안에 따라 비를 맞으며 산을 올랐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민가의 정원에는 백목련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개나리와 진달래도 한창이었다. 빗속에서도 만개한 꽃들은 아름다웠다. 간간히 우산을 든 채 하산 중인 등산객들이 눈에 띄었다. 바위가 많은 코스는 빗물에 미끄러질 수 있어 안전한 평지 쪽으로 길게 우회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산을 탄 후 하산했다. 그리고 24시간 해장국집을 찾아들어가 11시부터 낮술을 마셨다. 비는 1시쯤이 되자 완전히 그쳤다.
이후에도 연수동, 신포동, 자유공원까지 갑작스런 일정이 줄줄이 생겼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인물들이 두어 명씩 합류했다. 공원에 올라가 벚꽃을 구경하고 오랜만에 모교에 들러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학교는 내가 다닐 때와는 많이 달라져서 반갑기보다는 낯설었다. 한 동안 금주를 해서 그런지 술은 잘 들어갔지만 취기가 빨리 느껴졌다. 자유공원 근처 카페에 들러서 커피 한 잔 마신 후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왔다. 집 앞까지 오는 15번 버스 안에서 한 시간 내내 잠을 잤더니 내릴 때는 어느 정도 술이 깨었다. 다만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다.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이 없어졌다. 아마도 공원이나 술집에서 흘린 모양이었다. 오늘 같이 황당하고 대책없는 일정은 여러 번 경험할 건 아니지만 가끔 한 번쯤은 계획되지 않았던 일정 속에서 원 없이 흐트러져 보는 것도 꽤 유쾌한 일일 거라 생각이 들었다. 집을 나선지 딱 12시간 만에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피곤하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횡설수설. 남은 취기를 활용해 숙면을 취해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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