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하루 종일 봄비 본문
낮부터 내린 비가 늦은 밤까지 내렸다. 세고 강하지는 않았지만 봄비는 뭔가 맺힌 이야기를 비로소 풀어놓듯 집요하고 한결같이 내렸다. 비에 관한 내 정서의 지분은 연조가 제법 깊다. 유소년시절까지 그것은 이어져 있다. 청소년기에 만난 비는 변함없는 일상에 길들여져 무뎌진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마약 같았다. 그렇게 부드러워지거나 녹아 내린 마음은 흐르는 빗물과 함께 흐르곤 했다. 그럴 때면 착하고 순해진 것 같은 마음에 나 스스로 조금은 대견한 생각이 들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또 조금은 성숙해진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정작 세상은 빗물 속에 갇혀 있는데, 마음만은 흐르는 빗물과 함께 미지의 곳으로 혹은 그리운 곳을향해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 같아선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내려서 내가 있던 곳이 고립된 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가족의 수보다 우산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 비닐우산은 줄곧 내 차지였다. 하늘색 비닐 위로 투드득 투드득 떨어지던 빗물과 투명한 비닐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던 낮게 내려앉은 하늘, 생각난다.
얼마 전 인양되어 목포항에 을씨년스럽게 누워있는 세월 호 위에도 비는 내릴 것이다. 유족들의 눈물 위로도 비는 내리고, 그들과 마음을 함께 한 광장에도 비는 내리고, 중음신이 되어 포구와 배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들의 머리 위로도 비는 내릴 것이다. 그들의 슬픔, 원한, 안타까움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희화하고 조롱한 모든 사람들의 완악한 마음 위로도 비는 내릴 것이다. 비는 모든 것들을 공평하게 적신다. 아직도 비는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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