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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광장의 삶과 밀실의 삶 본문

현실

광장의 삶과 밀실의 삶

달빛사랑 2016. 11. 15. 18:19

일찍이 최인훈은 소설 광장을 통하여 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삶의 양상을 광장의 유형과 밀실의 유형으로 나눠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바가 있다. 광장의 삶이란 다중과 함께 하는 삶이고 그런 점에서 사회적 삶이다. 반면 밀실의 삶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내밀한 개인적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최인훈이 소설 속에서 형상화 놓았던 광장과 밀실의 의미를 자꾸만 되새기게 만들고 있다.

 

엊그제 시청 광장과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진 촛불문화제에는 백만 명이 넘은 인파가 참석해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필자 역시 그 현장(광장)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말할 수 있는데, 엊그제의 광장은 기실 현재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국민들의 분노와 요구의 표출을 가능하게 해줬던 열린 공간이었다. 국민들은 밀실에서의 분노를 광장으로 끌고 나와 공적인 요구로 전환시켰고 따라서 그 요구들의 파급력은 그만큼 큰 것이었다.

 

물론 광장을 통해 모든 것을 풀어가려는 시도는 광장을 자칫 왜곡된 군중심리를 폭발하게 하거나 맹목적 분노를 증폭시키는 현장으로 변질시킬 우려가 농후하다. 과거 부도덕한 권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광장을 부단히도 활용한 전사(前史)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광장의 흐름은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관에 의해 목적의식적으로 동원된 사람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여든 국민들에 의해서 광장은 토론과 주장, 요구와 연대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이처럼 광장을 통해 집단적 주장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진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 스스로 진실의 전달 주체를 자임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권력의 부조리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주고 국민의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어 말 그대로 사회감시 기능을 온전히 담당했다면 지금의 저 허다한 국민들은 굳이 광장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광장의 흐름이 일상화 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감시와 자정 기능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의 반증일 수 있다.

 

밀실은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지극히 내밀한 개인적인 공간이다. 사람들은 밀실에서의 사유를 통해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자유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고 진지한 성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한층 깊고 넓고 밝고 아름답게 갈무리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또 한편 밀실은 그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뭔가 음모적인 일들을 획책하고 정당하지 않은 일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작전회의소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밀실의 삶이 스스로 삼가는 신독(愼獨)에 의해 꾸려지지 못할 경우 그것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원한과 복수와 배신을 도모하는 복마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전대미문의 추문(醜聞) 역시 모든 것이 밀실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들 아닌가. 다양한 층위의 밀실에서 추악한 거래는 이루어졌고 그것이 지금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의 실세들을 역설적이게도 광장의 한복판으로 호출하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정치인들은 그 이전 광장 활용주의자들과는 달리 광장의 흐름을 두려워하고 있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밀실에서의 그들의 삶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광장의 삶이 보여주는, 그리고 그 속에서 분출되는 국민들의 뜻을 정확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밀실에 숨어 음모적인 마타도어를 생산하는 데 주력한다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그들의 이름은 광장에서 호명되고 역사의 이름으로 호출될 것이다.

 

국민들이 광장에서 물살이 되고 불길이 되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각각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자신만의 밀실에서 조용히 하루를 되돌아보며 편안한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 책상 앞에 앉아 혹은 조용한 침실의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거나 지인과 전화를 하거나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을 오랜만에 들춰보며 자신만의 삶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이 순박하고 평범한 마음의 결을 가진 국민들을 자꾸만 광장으로 불러내는 사회는, 광장이 갖는 오늘날의 실천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뭔가 문제가 있는 사회가 아닐 수 없다. 광장의 삶과 밀실의 삶이 갖는 나름의 의미들을 진지하게 되새겨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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