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본문
친구로부터, '자기 아들이 포항공대에 이미 합격했고,
11월 27일에는 서울대 면접도 보는데, 서울대도 합격하면
서울대를 가야할지 포항공대를 가야할지 행복한 고민'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면 안 되는데도... 찌질하게... 갑자기 부러움이 밀려오면서,
우리 아이가 순간 무척이나 한심스럽게 생각되었다.
우리 수현이는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 반에서 7, 8등이나 할까..
중학교 때 '질풍노도의 삶'을 살며 공부에 신경 쓰지 않을 때는
심지어 407명 중에 317등을 하기도 한 걸 생각하면 그나마도 감지덕지(感之德之)지만...
자기 방 정리도 잘 못하고, 물건을 사주면 잃어버리기 일쑤인 녀석,
특별한 꿈도 없는 것 같고(적어도 명시적으로 밝힌 적이 없으니까...),
고등학생으로서의 긴장감이란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천하태평' 아들 녀석을 보면... 그래선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답답해진다.
나는 적어도 '숫자화 된 것으로만 아이를 판단하지 않는
세련되고 속이 트인 아비가 되리라'고 늘 다짐해왔지만...
공부 잘 하고, 모범생들인 친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도 모르게 자꾸 그 애들과 수현이를 비교하게 되고,
부러워지고...... 그러다가 살짝 슬퍼진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미덕이
분명 우리 아이에게 있을 거라는 믿음 또한 버릴 수 없다.
적어도 우리 아이는 나를 존경하고, 나의 '조건과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수현이의 주변에는 언제나 친구가 많다.
얼마 전에는 자기 반 1등이라는 친구도 데려와서 함께 잠을 자기도 했는데,
그 친구가 수현이에게 말하기를,
"나는 네가 참 부러워. 너는 무척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 같아"라고 했단다.^^
"걔도 참... 그렇게 보는 눈이 없는데 어떻게 1등을 한다니?"하며,
머쓱한 미소를 짓는 아들에게 나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속으로는 '그래... 자유로운 삶이라... 그건 정말 좋은 일이지..' 하고 생각했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들에게 베푸는 것에 대해 별로 아까워하지 않으며,
할머니와 소파에 앉아 드라마 속 인물에 대해 장시간 토론(?)도 해주는 자상한 녀석,
물론, 그럴 때마다 나는 "고등학생 놈 중에서 드라마 줄거리를
너만큼 꿰고 있는 놈은 없을 거다"라며 혀를 찼지만....^^
그런 아들 녀석이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했다.
최근엔, 맘먹고 공부를 한 번 해볼 테니 과외를 시켜달라고 해서
없는 살림에 영어와 수학 선생을 각각 초빙했다.
아들을 만난 선생님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수현이가 참 성실하고 착해요."라고 칭찬의 말을 했지만,(얼마나 겪었다고..^^)
그건 피고용인(?)의 립서비스라고 웃어넘겼는데...
이 녀석이 내게 보이는 모습 말고, 뭔가 '기특하고 대견한 미덕'을
분명 갖고 있기는 한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사실 나 역시 자식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50점 이하의 아버지 아닌가? 반면 수현이는
(자식으로서 모습을 점수화 한다면) 적어도 70점은 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작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다른 아버지들을 부러워해야 하는 건
수현이가 아닌가 싶다. 50점 짜리(어쩌며 그 이하) 아빠가 70점(+알파) 짜리 아들에게
뭔 할 말이 있겠는가...ㅠㅠ
그래.. 아들아.. 포항공대, 서울대.. 못 가도 좋다.
착하고, 건강하고, 폼나게만 자라다오.
그게 못난 아빠의 한결같은 소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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