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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달빛사랑 2009. 9. 24. 17:01

 

바버라 오코너 지음·신선해 옮김/다산책방·9800원

 

절망에 빠진 11살 소녀의 발칙한 희망 프로젝트

 

 어린 아이에게 가난은 과연 어떤 색깔일까?
 조지나라는 11살 소녀가 있다. 그녀는 최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빠는 감쪽같이 사라져버렸고 그(아빠)가 남긴 거라고는 25센트 동전 꾸러미 세 개와 1달러 짜리 지폐만 들어 있는 마요네즈 한통뿐. 게다가 집주인은 집세를 내지 않았다고 즉각 방을 빼라고 강요한다. 조지나는 아빠의 부재도 아프지만, 하루아침에 살 집이 없어졌다는 게 더 아프다. 

 

 결국 엄마는 '집세를 구할 동안만'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고물 자동차에서의 생활을 제안하고, 그때부터 그녀의 가족은 자동차에서 자고 맥도널드 화장실에서 씻는 생활을 반복한다. 어머니는 세탁공장, 다방 등을 전전하며 상황을 호전시켜보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그들을 둘러싼 가난의 망토는 쉽게 벗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친한 친구들에게 행여 들킬까 조지나가 연출하는 '앙큼하면서도 서글픈 몸짓'들은 웃음 끝에 감춰진 짙은 슬픔을 동반한다. 하루하루 '평범한 생활'을 동경하던 조지나는 어느 날 아침, 마침내 가족을 위한 기상천외한 '생활전선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된다. 즉, 조지나는 개를 훔치고 난 후, 개주인으로부터 사례비를 받아 집을 얻는 데 사용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다운 천진함과 아이답지 않은 주도면밀함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총 8단계에 걸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대한 리포트가 작성되는데, 독자들은 그것을 보며 눈물 섞인 웃음을 또 한 번 웃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샘솟는 짜증, 분노, 슬픔, 수치심이 딱 열한 살짜리의 감성으로 표현돼 있다. 상처를 곱씹는 애어른 대신 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적당히 순수한 주인공을 내세운 건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아이는 포기할 줄 모른다. 우는 대신 화를 낸다. 체념하는 대신 머리를 굴린다. 떠나버린 아빠를 그리워하는 대신 지금 자신 곁에 있는 엄마와 동생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해 세상을 향해 씩씩거린다." 이 얼마나 신파를 벗어난 탁월한 캐릭터 창조란 말인가? 
 

 뒷부분, 무키라는 부랑자를 만나면서 조지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무키는 삶의 어려움 따위에는 초연한 철학자풍의 부랑자이다. 그는 조지나의 동심을 지켜주면서도, 조지나로 하여금 그녀의 판단이 불러올 부작용을 스스로 제어하게 만든다. 아마도 이 무키의 등장으로 인해 현실의 핍진한 묘사에 설득력과 공감을 획득했던 소설이 다소 판타지 성격의 소설로 변해버린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한 소녀의 성장 소설이고, 그 소녀의 좌절과 꿈, 희망을 그리기 위해서는 뭔가 멘토가 될 만한 인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왜냐고? 11살 소녀가 스스로 무언가를 깨닫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가족간의 불화와 친구들 앞에서의 자존심 훼손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어렵지않게 조지나의 정서의 흐름에 감정이입이 될 거라 생각한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한 감수성 예민한 소녀가 앙큼한 개도둑으로 전락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껏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평범한 행복'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소설 전면에 녹아 있는 현실성, 유머러스함, 열한 살 소녀의 천진난만함은 아주 자연스럽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시련이 닥칠 때 가장 중요하게 붙들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곱씹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순간에 조지나가 얻게 된 인생의 깨달음과 더불어 독자들 역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게 하려는 저자의 따뜻한 의도임에 분명하다.(출판사 서평)"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의 청소년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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