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 놀다.. 본문
기도문이야 언제나 똑같은 내용이지요.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할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 이외에 다른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마음 속에서 모든 순간들과 모든 존재들을 하나로 합쳐주는 것입니다. -장 그르니에, <섬>, '고양이 물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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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설은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해 보았었다. 그리하여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봤으면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가 가장 귀중하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다고....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단순히 살아가는 일 뿐만 아니라 자기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하여>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인 힘이 결핍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환상에 속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같은 타고난 부족함을 무슨 드높은 영혼의 소치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 있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하찮은 행동들을 숨기곤 한다. -장 그리니에, <섬>, '케르겔렌 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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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민음사에서 출간되었고, 고려대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이 판형은 아마도 '골동품'이 되었을거다.
블친구들 중 이 판형의 책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우린 정서적 연대 속에 있는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장 그르니에의 <섬>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좋아하던 누나의 책장에 꽂힌 이 책은 일단 부피가 크지 않아서 손이 갔고,
수필집이라는 '편안한 장르'라는 점에서 눈이 갔으며,
읽기 시작하면서 전율로 다가오던 그르니에의 섬세한 표현으로 인해 최후로 마음이 갔다.
사춘기 시절은... 의미에 대한 이해보다, 미문(美文) 대한 동경이 컸던 시기가 아니던가.
알베르 카뮈는 20살이 되어서야 이 책을 처음 접하곤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그렇게 따진다면, 나는 카뮈보다는 운이 좋은 셈이었다.^^
특히, 자신의 고양이 물루의 삶과 죽음에 대해 보여준 깊이 있는 성찰과 섬세한 표현은
이 수필집이 미셀러니(신변잡기)의 수준을 넘어 철학의 영역에까지 닿아있다고 판단하게 만들었다.
이후, 대학에 가서도 머리가 아플 때나, 답답할 때 수시로 꺼내 읽고
여백에 당시의 감상을 메모로 남기곤 했던 기억이 있다.
이미 누렇게 변색된 내 책은 1980년 판본이다. 지금은 아마도 산뜻한 판본으로 다시 나왔겠지만,
내 젊은 날의 고민과 방황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책을 나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 [달빛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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