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무 알코올 9일째 (11-3-일, 맑음) 본문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지난달(10월) 25일, 40여 년 만에 만난 후배 광규와 신포동에서 술 마신 후 오늘까지 9일간 술 마시지 않았다. 작년 여름 의도적인 금주와 다이어트를 할 때를 제외하곤 술 없이 일주일 이상을 보낸 적이 많지 않다. (기억으로는 없다) 많으면 3번(물론 내 자의가 아니라 약속이 연거푸 잡히는 경우), 적어도 1번은 반드시 마셨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잦다. 혁재가 갈매기에 자주 오지 않고, 나도 예전처럼 혼자 술 마시는 일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쉬는 날에도 거의 집에 칩거하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다만 은준이가 자주 동네에 찾아와 간단하게 한잔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의 방문도 예전보다는 뜸하다. 물론 잦았던 술자리가 줄어들면 건강에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남는 일이다. 나에게는 퇴근할 때, 사무실에서 전철역까지 내려오는 5분 정도의 시간이 가장 강렬한 유혹의 시간이다. 예전에는 대개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발길을 갈매기로 돌리곤 했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순수하게 술에 관한 욕망, 다시 말해 그저 술 마시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술자리’에 관한 욕망은 별로 없다. 술이라면 집에서 혼자 마셔도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술은 함께 마셔야 맛있다고 생각한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게 일시적으로 그런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사람 만나는 게 예전처럼 썩 재미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나쁜 건지 좋은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오전에 운동 마치고 채소 사러 갔다가 달걀과 도토리묵, 칼국수 면과 사과만 사 왔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좋은 채소는 이미 다 팔렸고, 무른 오이와 호박, 값이 부쩍 오른 상추만 있었다. 게다가 내가 찾는 청경채도 없었다. 그래도 알 굵은 달걀 한 판을 5,500원에 살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걸 보면 주부가 다 된 느낌이다) 새로운 한 주도 무알코올로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술을 덜 마시니 늦은 시간 음식물을 먹을 일도 없고, 해장하느라 탄수화물 덩어리인 라면이나 냉면을 먹지 않아도 되니 확실히 체중도 줄고 혈당도 낮아졌다. 다만 오늘 점심에는 채소 가게에서 사 온 직접 손으로 뽑은 칼국수면으로 오랜만에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물론 깻잎도 넣고, 숙주도 넣고, 양파와 고추, 마늘과 파 등 넣을 수 있는 채소는 다 넣었고 달걀도 두 알 넣어 먹었다.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저녁에는 오전에 사 온 도토리묵과 집에 있는 냉면 육수로 묵사발을 만들어 먹었다. 오이를 한 개 다 썰어 넣고, 역시 갖은 채소와 김 가루, 참깨, 송송 썰어 참기름에 버무린 김치를 넣었더니 맛이 기가 막혔다. 앞으로 종종 해먹을 생각이다. 쌀밥은 안 먹었다. 먹고 나서 혈당수치를 재어 보니 ‘지나치게’ 정상이었다. 확실히 탄수화물을 덜 먹으면 혈당은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고민이다. 밥을 안 먹으면 힘이 안 나고, 밥을 먹으면 혈당이 오르니,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단을 어떻게 짜야 할지 고민이다.
오늘 새벽에도 모기에게 물렸다. 화가 나서 자다 일어나 기어코 두 마리를 잡았다. 손으로는 도저히 못 잡겠기에 벽과 천장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모기약으로 잡았다. 좀 전에도 책상 위로 모기 한 마리가 날아다녀 집요한 추적 끝에 잡긴 했는데, 찝찝하다. 도대체 한여름에는 없던 모기들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겨울 문턱인 11월에야 갑자기 나타나 극성인지 모르겠다. 세상 모든 생명과 만물은 다 쓰임이 있다던데, 도대체 생태계 안에서 모기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인간인 나를 긴장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건가? 오늘 밤에는 홈매트를 켜 놓고 자야겠다. 망할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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