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그들을 만난 그다음 날 (11-5-화, 맑음) 본문
어제 일이다. 퇴근 무렵 혁재와 통화했다. 만석동에 있다가 로미, 성국과 함께 신포동으로 술 마시러 간다며 오라고 했다. 알고 보니 혁재의 생일이었다. 버스가 동인천역 삼거리에서 좌회전할 때 혁재는 다시 전화해 “형, 윤식당으로 오세요” 했다. 한창 손님이 몰릴 시간인데 요행히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윤 식당에 도착하니 성국, 혁재가 밖에 나와 있었고 시인 후배 산이가 반려견 ‘나무’와 함께 식당 앞에서 그들과 얘기하고 있었다.
윤 식당은 어제도 만원이었다. 그곳에서 모둠회와 새우튀김, 홍어 애(간) 등 서너 개의 개별 안주를 주문해서 먹었다. 사실 윤 식당은 그리 가성비가 높은 집은 아니다. 안주 하나의 가격은 비싼 편은 아니나 양이 적어서 소주 두어 병을 마시려면 어차피 안주도 두 개 이상은 주문해야 한다. 다만 음식 맛은 괜찮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이 입소문을 내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려는 호기심 손님들도 많이 찾는다. 그러다 보니 퇴근 무렵에는 자리가 없어 돌아가거나 한참 기다렸다가 간신히 입장하는 손님들이 많다.
이런 식당은 남자들 두어 명이 짧은 시간 안에 집약적으로 술 마실 때나 방문하는, 그야말로 포장마차 같은 곳이지 친구나 애인 등과 조용히 대화하려는 사람은 (황금시간인 5시에서 8시 사이에는) 찾을 곳이 못 된다. 물론 붐비지 않을 때는 갈 만하다. 사장 내외도 무척 친절하다. 소문만큼 가성비 술집은 아니지만 근처에서 이만한 술집 찾기도 쉽지 않다. 5점 만점에 3.5점은 된다.
윤 식당을 나와 후배들이 이구동성으로 ‘흐르는 물’에 들르자고 해서 3주 만에 다시 그곳에 들렀다. 오늘은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들어갈 때, 앞쪽 테이블에 사장과 대화하는 손님 한 명뿐이었고 내가 나올 때까지도 우리밖에 손님이 없었다. 성국이도 혁재도 안 사장과 아는 사이라서 세 사람은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이 자리에서 안 사장은 성국과 혁재에게 공연을 부탁했고, 두 사람은 오케이 했다. 술자리에서 이루어진 약속이라서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안 사장에게는 결코 나쁜 카드가 아닐 것이다. 10시 40분쯤 나는 버스 시간에 맞춰서 먼저 일어났다. 성국이가 정거장까지 따라와서 내가 차에 오르는 걸 보고 나서야 들어갔다. 수염이 까슬한 50대 후반의 사내가 차창 밖에서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보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똑같이 하트 포즈를 해 보였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 샤워하고 이내 잤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숙취가 다소 있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술자리를 갖고 나면 항상 그렇다. 새벽에 속이 쓰려 먹다 남은 미역국을 데워서 마셨더니 속이 한결 편해졌다. 날은 쾌청했고 공기도 양호했지만,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서 9시쯤 느지막이 일어났다. 10시쯤 허기가 느껴져 오랜만에 해장라면을 끓여 먹었다. 보통 아침은 먹지 않는데, 술 마신 다음 날에는 항상 허기가 느껴져 뭔가를 먹게 된다. 몸에 안 좋은 음식이 맛있다는 건 국룰이다. 잔인한 일이다. 점심에는 깻잎과 숙주와 오이를 듬뿍 넣은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오후부터는 ‘반지의 제왕-힘의 반지’ 시리즈를 몰아 봤다. 20년 전에 만든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보다 제작비를 몇 배를 더 쓰고도 (물론 시리즈는 1, 2 합쳐서 1시간짜리 16편이니 영화보다는 제작비가 많이 들었겠지만) 이렇게밖에 못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여주인공(갈라드리엘)의 캐스팅도 맘에 안 들었고, (전혀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았다)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인 갈라드리엘을 민폐녀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원작이 있으므로 원작의 내용에 기반해서 서사를 만들었겠지만, 확실히 감독의 실력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결국 시즌2를 시청할 때는 빠르게 가기를 누르며 봤다. 시즌5까지 예정된 드라마였던 모양인데, 과연 앞으로 3~5시즌이 만들어질까가 의문이다.
참지 못하고 결국,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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