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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좋은 사람들과 밥 먹는 일 (9-11-수, 소나기) 본문

일상

좋은 사람들과 밥 먹는 일 (9-11-수, 소나기)

달빛사랑 2024. 9. 11. 20:26

 

좋은 사람들과 먹는 밥은 늘 맛있다. 그저 장삼이사들이 흔히 찾는 국밥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을 때는 그 어떤 요리보다 맛있는 국밥이 된다. 음식은 혀로만 맛보는 게 아니라 눈과 귀, 가끔은 손끝으로도 맛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식을 같이 먹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유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대화,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식탁의 분위기 등이 또 하나의 양념이 될 때 평범한 국밥은 비범한 소통의 매개이자 특별한 음식으로 거듭난다. 나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식탁의 분위기가 따스하게 깊어 가는 과정을 지켜볼 때마다 소년처럼 가슴이 설렌다.

 

오늘 박 실장(전 비서실장), 보운 형과 함께 오랜만에 만수동 ‘이화순대’를 찾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곳을 찾았을 때 순댓국 가격은 1만 원이었는데 오늘 보니 12,000원, 무려 2천 원이 올랐다. 하긴 가격이 오른 게 어디 순댓국뿐일까. 우리는 곱빼기(15,000원)를 주문했는데, 가격이 얼추 삼계탕값과 맞먹었다. “이거 너무 비싼 거 아니야?”라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다행히 순댓국은 여전히 담백하고 맛있었다. 다만 식당 경기는 예전만 못한 듯 보였다. 점심시간에 방문했는데도 빈자리가 많았다. 예전에는 한참 기다려야 겨우 자리가 나곤 했는데, 이게 경기 탓인지 너무 오른 국밥값 탓인지 아니면 전반적으로 서비스 품질이 나빠져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약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옛날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의 맛집이었고 엄마와도 자주 찾던, 그야말로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어서 더욱 그런 격세지감을 느꼈던 게 아닌가 한다.

 

국밥집을 나와 우리 집 근처로 이동해 늘 가던 카페를 찾았다. 한적한 맛에 자주 가던 카페인데 오늘따라 웬 손님들이 그리 많은지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아주머니 손님들이 단체로 왔는지 별실 안에서는 연신 자지러지는 여성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부부처럼 보이지 않는 중년 남녀가 마주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 중인 테이블도 두어 개 눈에 들어왔다. 우리를 알아본 사장은 “오늘은 무척 바쁘네요” 하며 괜스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곳으로 가려다가 그 표정에 마음이 약해져서 그냥 자리에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박 실장은 얼마 전 중국을 다녀온 이야기를 무용담 섞어서 맛깔나게 했고, 보운 형은 벌초하다가 손가락을 베었지만, 그 즉시 효과적으로 지혈해서 꿰매지 않고도 상처가 아물고 있어 다행이라며 밴드로 감은 손가락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보운 형은 “그나저나 토요일에 술 약속이 잡혀있는데, 이 정도 상처에는 술 마셔도 괜찮겠지요?”라며 술꾼다운 질문을 했다. 박 실장은 웃기만 했고 나는 “아무래도 상처가 더디 아물겠지요. 먹더라도 평소보다 적게 마시세요” 했다. 서너 달 전 생인손이 덧나 수술했을 때, 나 역시 음주가 상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숱하게 검색한 바 있다. 술꾼들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언제쯤 나을까를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 언제부터 술 마실 수 있는지를 더욱 궁금해하니,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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