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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어제는 비 내려 좋은 날이었어 (9-13-금, 소나기) 본문

일상

어제는 비 내려 좋은 날이었어 (9-13-금, 소나기)

달빛사랑 2024. 9. 13. 20:27

 

 

 

어제는 오랜만에 혁재를 만났다. 종일 비 내리고 내게는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서 갈매기에 들러볼 생각이었다. 혁재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밥 먹는 중이었고 아침부터 막걸리도 이미 두 병을 마신 상태라고 했다. 아침부터 마신 게 2병이라면 혁재에게는 그야말로 입만 축인 셈이다. 은준에게도 연락했으나 그는 이미 낮부터 술 마시기 시작해서 퇴근 무렵 내가 전화했을 때는 피곤해서 도저히 갈매기까지 나올 수 없다고 했다. 비 내리니 다들 말랑말랑해지는 감상을 주체할 수 없었나 보다. 거세게 내리던 비는 퇴근 무렵에는 잠시 부슬비로 바뀌어서 전철 타고 가려던 계획을 바꿔 중앙공원 산책로를 걸어 갈매기로 향했다. 날은 습하고 더웠다. 가을비가 내려도 시원하기는커녕 더욱 덥게 느껴지는 건 생전 처음이다.

 

갈매기에 도착하니 가수 승미가 혼자 앉아 있었다. 승미 남편 상우와 영창악기에서 함께 노동 운동했던 갈매기 형수가 승미 내외를 불러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던 모양이다. 상우는 현장 일이 덜 끝나 도착 전이고, 식사 중이었던 혁재도 늦을 게 뻔해서 승미와 먼저 막걸리를 마셨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승미와 함께 술을 마시려면 그녀의 현재 상태를 면밀하게 살펴야만 한다. 목소리가 뜬 걸로 보아 최근에는 조증 시기인 것 같았다. 그래서 승미에게 막걸리를 따라주면서도 무척 조심했다. 둘이 마시기 시작한 지 30여 분 지나서 혁재가 도착했고, 다시 20여 분 지나서 상우가 그의 노동조합 동료들과 도착했다. 상우는 자리에 앉자마자 승미 앞에 놓인 술잔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형님, 잘 지내셨어요?” 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 상우에게 (승미가) 많이 마시지 않았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뜻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더니 상우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우 일행의 술값을 내주고 싶어서 주방으로 가서 조심스럽게(상우 일행에게 들리지 않게) “상우네가 먹은 꽃게탕 가격이 얼마예요?” 하고 물었더니 잠깐 고민하던 형수는 “3만 원만 주세요” 했다. 애초에 팔려고 만든 게 아니라 승미 내외에게 저녁 대접하려고 만든 꽃게탕이다 보니 가격이 고민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술값과 함께 6만 5천 원을 미리 계산해 주었다. 영수증을 받고 돌아서며 곰곰 생각해 보니 애초에 (돈 안 받을 생각으로) 상우와 승미에게 서비스로 나간 안주인데, 내가 계산한다고 하니 돈을 받은 게 이해가 안 갔다. 그들이 마신 술값 포함해서 나와 혁재가 마신 술값만 받았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주방이 분주할 때 대뜸 물어봤고, 형수는 다른 손님들에게 나갈 안주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보통 탕 안주 가격을 생각하고 무심코 대답한 것으로 추측된다. 나중에 갈매기 형수님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 일행이 집에 가려고 할 때, 승미 내외에게 “이건 문 선생님이 너네에게 사주시는 거야” 하며 반찬거리 한 보따리를 싸주었다. 그러자 승미는 웃으며 “오빠, 고마워요. 잘 먹겠습니다.” 했다. 그래도 갈매기 형수가 잔정이 많아 후배나 지인들을 살뜰히 챙기곤 한다. 나 역시 형수가 챙겨주는 반찬거리를 여러 번 받아와 맛있게 먹곤 했다. 당기는 안주가 많지 않아도 내가 갈매기에 자주 가는 이유는 그곳에 가면 이처럼 사람 사는 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마음이 편하다. 이런 단골집을 갖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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