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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후배를 만나다 (9-9-월, 맑음) 본문

일상

후배를 만나다 (9-9-월, 맑음)

달빛사랑 2024. 9. 9. 21:43

 

무난한 월요일이었다. 퇴근 무렵  Y가 연락하기까지는. 연세대에서 있었던 모종의 행사에 참석했던 Y는 행사가 끝나고 교정을 걸어 나오며 나에게 전화했다. "선배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연세대 몰라보게 달라졌네요"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지금 내려오는 중이야? 그럼 잠깐 볼까?" 했더니 "공항철도 타고 내려가고 있으니 계산역에 도착하면 연락드릴게요" 했다. 7시 30분, 계산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7시 45분, 시청역에서 Y를 만났다. 포니테일 머리를 한 Y는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직장을 그만둔 후 처음 만났다. 말투나 표정은 여전히 발랄했다. 우리는 교육청 앞쪽으로 걸어오며 적당한 맥줏집을 찾다가 예술회관역 근처까지 와서 투다리를 발견했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다. 그곳에서 나는 소주를 그녀는 맥주를 마셨다. Y는 전 직장 대표 L에 대한 감정이 아직도 누그러지지 않은 듯 시종일관 L에 대해 증오와 푸념을 풀어놓았다. Y의 말은 이를테면 "깜도 안 되는 인간", "철학도 없는 놈이 무슨 대표를", "연봉이 아까워", "내가 이제껏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무능한 대표" 등과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고 생각했는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선배, 죄송해요. 이제 그만할게요" 했다가 이내 다시 L을 성토하기를 몇 차례 더 반복했다. 내가 생각해 봐도 L은 무능하고 한 단체의 대표감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에도 보이지 않는 커넥션이 있고 그들만의 리그가 있으며 정치적 역관계가 작동한다는 것을 순진한 그녀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L은 그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한 문화 카르텔의 필요에 의해 그 자리에 앉혀진 바지 대표인 셈인데,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단지 L의 개인적 성정과 무능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도 알고 있는 '그들'의 넌덜머리 나는 막후 협잡의 유탄을 Y가 맞게 될 줄은 몰랐다. 순진한 Y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녀가 L을 성토할 때 나는 토 달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다. 투다리를 나와 전철을 타기 위해 예술회관 역으로 내려오다 '필스너' 맥줏집이 보여 그곳에서 간단하게 2차를 했고, 바로 앞의 한신우동에서 우동을 먹은 후 택시를 불러 Y를 보내주고 나도 택시 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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