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나는 당분간 이곳에 있을 거야 (6-12-수, 맑음) 본문

일상

나는 당분간 이곳에 있을 거야 (6-12-수, 맑음)

달빛사랑 2024. 6. 12. 18:40

 

사실 나는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 집이 없던 시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평생 집이 없었던 건 아니고 유년기에서 대학 2학년까지는 집이 있었고, 아버지가 사업이 망한 후인 대학 3학년 때부터 결혼한 30까지는 집이 없다가 31살에 비로소 집을 샀다.❚노동운동 하던 내가 집을 살 수 있었던 건, 역시 노동운동 하다 구속됐던 아내가 출소하고 몇 달 후 임신해서 뭔가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운동권 출신에게는 취직할 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다. 그런데 마침 운 좋게도 대학입시에서 논술 시험을 보기 시작하면서 각급 입시 학원에서도 논술 강의가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나 역시 아는 선배 학원의 논술과 국어 강사로 취업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내 강의는 인기가 많았고 이내 입소문이 나서 개인 과외를 부탁한다는 연락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가고 100만 원을 받는, 당시 인천 상황에서는 상당한 고액 과외를 적게는 5개에서 많을 때는 10개까지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 결과 짧은 기간에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몇 년 후에는 집을 살 수 있었다. 처음에는 25평, 이후에 32평, 52평 아파트를 각각 샀다.❚그러다 13년 전, 친구의 사업 보증을 서주는 바람에 그가 진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고, 결국 집까지 팔게 되었다. 이후 집 없는 신세가 되어 두어 번의 이사를 해야 했다. 그래도 지금 사는 집주인을 잘 만나서 비록 월세지만, 현재 이 집에서 7년째 살고 있다.❚그 전에 살던 남동 아파트도 지금 집주인의 소유였는데, 그러고 보면 이분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게 얼추 11년이 된 것이다. 고마운 건 시세보다 훨씬 싼 임대료를 내고 살기 시작했는데, 아직 한 번도 임대료를 인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인은 나를 볼 때마다, 내가 조용하고 깨끗해서 그 이전에 살던 사람들과는 많이 비교된다면서, “월세 올릴 생각 없으니, 여기 살다가 돈 벌어 집 사서 나가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나도 그럴 생각이다.

 

지하철역도 가깝고 주변에 식당과 병원은 물론 각종 편의시설도 많을 뿐만 아니라 인천대공원과 미추홀도서관, 산책로도 가까워 당분간은 이사할 생각이 없다. 물론 내 집 장만할 만큼 여유가 있다면 일부러 월세 내며 남의 집에서 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아직은 준비가 안 됐으니, 이곳저곳 이사 다니느라 지출되는 이사비용을 절약하고 싶다는 것뿐이다. 단독주택이라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지만, 그래서 연료비와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옥상 텃밭에서 상추와 오이, 호박을 기를 수 있고, 관리비가 따로 나갈 일이 없어 이것저것 생각하면 살기에 그리 나쁜 환경은 아니다. 오래 살기도 했고, 엄마와의 추억도 있는 곳이라서 당분간 나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아니 머물 수밖에 없다. 하늘의 엄마는 분명 빨리 돈 벌어 이곳을 떠나길 바라고 있겠지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