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미안하지 않다 (3-2-토, 맑았다 점차 흐림) 본문
날이 갑자기 추워졌어요. 마지막 꽃샘이길 바라지만, 오래전, 3월 말에도 폭설이 내린 적이 있어요. 막 시작된 봄이 이곳저곳에서 새 단장하고 있을 때, 떠난 줄 알았던 겨울이 갑자기 다시 들이닥쳐 분분한 눈발로 허공에 칼질을 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안쓰럽더군요. 그 집요함은 하나도 대견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알아요. 겨울은 쉽게 물러가지 않을 거라는 걸. 매번 그런 몽니에 신경 썼다면 이곳에 봄은 없었을 거예요. 봄은 봄대로 모든 곳에 봄의 옷을 입히기 위해 분주할 겁니다.
오늘도 집에 콕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어제처럼 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아, 엄밀히 말하면 받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받은 거라고 해야 할까 봐요. 아예 밤 8시까지 전화기를 꺼놨거든요. 자기 전에 켜보니 부재중 전화가 서너 개가 있더라고요. 확인 전화는 하지 않았습니다. 휴일에는 온전히 호젓했으면 좋겠어요. 뭔가 나에게서 모종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에 집중하질 못하겠어요. 일단은 그때그때 메모해 놓긴 하는데, 그 메모가 변화의 정체를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기대와 불안이 반반씩입니다.
다만 섭생(攝生)에 좀 더 신경 쓰면서 일상을 총체적으로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너무 많이 풀어졌어요. 혈당수치도 다시 높아지고 체중도 많이 늘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68kg이라서 주변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체중을 줄였던 두어 달 전보다는 훨씬 보기 좋다고 말들 하지만, 혈압과 고지혈, 당뇨를 조심하려면 65~6kg까지 다시 감량할 필요가 있습니다. 술 덜 마시고 탄수화물 덜 먹으면 되는 거지만, 곳곳에 다이어트를 방해하는 ‘지뢰’들이 지천이라 성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내 주치의가 좀 더 나를 귀찮게 했으면 좋겠어요.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연주를 듣습니다. 특히 앨범 <December>는 대학시절부터 좋아했어요. 졸업 후에 민음사 주간으로 일하다 하버드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이영준 선배의 자취방에서 처음 만난 이후 겨울이면 매일 단골 카페에 들러 이 음반을 통으로 듣곤 했지요. 물론 이미 12월은 지났지만 겨울이 그 흔한 미련조차 모두 거두어 이곳을 떠나기 전, 이 연주곡들을 들어줘야 할 것만 같았어요. 그래야만 비로소 나의 겨울을 온전히 떠나보내고, 오는 봄을 산뜻하게 맞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늦겨울이거나 이른 봄의 한밤중입니다. 이런 고즈넉함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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