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약간 쓸쓸한 일요일 (1-7-일, 맑음) 본문
내일이 엄마의 3주기 기일이라서 오늘 가족들과 함께 묘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동생이 어제 학원을 확장, 개원해서 정신이 없었고, 큰누나 또한 컨디션이 형편없어서 이달 말로 가족 모임을 미루기로 했다. 엄마가 서운했으려나. 하긴 엄마는 기일에 찾아와 제삿밥을 드실 양반도 아니고 오히려 가족들 간 화목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할 분이시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엄마 생전에도 우리 가족은 유교적인 제사를 지내는 대신 기독교식인 추도 예배를 봐왔다. 따라서 엄마는 애초부터 홍동백서 조율이시의 제사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셨을 거다. 엄마는 누구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으니까. 다만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가족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건 슬픈 일이다. 자식인 내가 할 일은 부모님에 관한 기억이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서 불현듯 사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환기하고 되새기는 것, 바로 그것뿐이다. 부모님이 바라는 것도 그것이겠지.
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엄마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도 슬프지만, 소천하시던 그 새벽, 엄마는 혼자 하늘에 드셨다는 것이 자꾸만 생각나 마음이 울적해진다. 자식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기도하듯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손을 한 번씩 잡아본 후 주무시듯 눈을 감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나도 그렇고 가족들도 그렇고, 모두가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이 불효자가 되었다. 심지어 나는 곁에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회한이 크겠는가. 아무리 평온하게 운명하셨더라도 홀로 생사의 경계를 넘으시게 했다는 건 자식으로서 무척 송구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보지는 못했지만, 엄마는 분명 평온하게 주무시듯 하늘에 드셨을 거야’라고 지금까지 한결같이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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