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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형제들 (11-03-금, 흐리고 잠깐 비) 본문

일상

형제들 (11-03-금, 흐리고 잠깐 비)

달빛사랑 2023. 11. 3. 20:00

 

 

치과에 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설 때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명절이나 부모님 기일에나 연락하던 동생이 평일 오전에 전화를 건 것은 무척 의외였다.
“어디세요? 지난번에 먹은 감자탕이 너무 생각나서 형님하고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연락했어요?”

“어, 그래? 나는 지금 치과에 들러야 하는데……, 하지만 오늘은 소독만 하면 돼. 1시 안에는 끝나.”

“그래요? 치과가 어디지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모래내시장 근처. 오래 걸릴 거 같지는 않은데, 아무튼 출발할 때나 도착했을 때 전화해.”

전화하면서도 ‘혹시 따로 무슨 할 말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만나서 들으면 될 일이었다.

 

치과 진료는 생각보다 늦게 시작되었고 오래 걸렸다. 동생이 다시 내게 전화했을 때, 나는 여전히 치과에 있었다.

“조금 더 걸릴 거야. 집에 가 있어. 비밀번호 알지? 끝나고 출발할 때 전화할게.”

전화를 끊자 치위생사가 다가와 레이저 치료를 위해 입에 뭔가를 물려주었다. 금속 바를 손으로 꼭 쥐고 입을 다문 채 약 5분에서 10분 정도 누워있다가 접수대로 가서 다음 주 진료를 예약했다. 치과를 나오며 동생에게 전화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동생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모자를 쓰고 있었다. 지난번 내 생일에 보았을 때보다 얼굴이 좋아 보였다.

 

우리는 단품으로 각자 해장국 한 그릇씩 먹을까, 전골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2인분에 35,000원인 전골을 시켰다. 단둘이서 이렇게 식사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에 정다웠던 그 옛날의 형과 동생 사이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여지없이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가 계셨다면 형제간에 정답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기뻐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근처에 있는 우리 집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평소에 과묵한 동생은 오늘따라 무척 다변이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나이를 먹었다는 증표 같기도 하고..... 낯설면서도 정겨웠다. “앞으로 뭔가 취미를 찾아야겠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할 때는 퇴직을 앞둔 장년 특유의 쓸쓸한 표정도 잠깐 보였다. 

동생은 자녀들의 결혼과 자신의 미래에 관해서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머리를 쓸어올릴 때는 '아, 동생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나이차가 제법 있어(5년 차) 어릴 때부터 나를 어려워했던 동생이다. 사춘기 시절 그는 형을 무척 좋아했고 형을 닮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안다. 그가 국문학과를 진학하게 된 것도 사실 나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현재도 그는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니 그의 평생 진로를 결정하게 만든 것도 나인 셈이다. 

 

잠시 우리  관계가 소원했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혼자가 되고, 특히 사업하던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주는 바람에 내 사업 역시 풍비박산 났을 때였다. 그때 동생은 어쩔 수 없이 장남인 내 역할을 대신해야 했는데, 그게 동생 내외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자격지심에 한동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하나의 문제를 사이에 두고 나와 동생만 있었다면 사실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사이에는 어머니도 계셨고 제수씨도 있었다. 어머니야 형제가 결정하면 그대로 따라오셨을 게 분명했지만, 제수씨는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 명절을 챙기는 문제 등과 관련해 우리와 생각이 다를 수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걸 섬세하게 배려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나에게 남을 배려할 만큼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물론 어머님의 전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는 연민 같기도 했지만) 장남으로서 형으로서 그리고 아주버니로서 나의 의견을 강하게 밀어 붙였다면 관철할 수도 있었겠지만, 가족 간의 일이 어디 그런가. 기일마다 추모 예배를 드리는 문제도  생각이 달랐다. 신앙이 있는 나와 달리 동생 내외와 조카, 내 아들은 종교가 없다. 어머니 생전에는 어머니 뜻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가족 예배를 드렸지만, 어머님 돌아가시고 첫 기일에 동생은 말했다. "형님, 추모 예배 문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애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속으로 '엄마가 그렇게 원하던 신앙을 엄마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버리려는 거지?' 하는 생각에 서운하기도 했다. 사실 애초부터 없었던 거라서 버린다는 말은 어폐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후에 기일과 명절 중 하나만 챙기자고 동생은 말했다. 제수씨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 기인한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마음이 심란했지만, 나는 바로 그러자고 했다. 마음이 중요하지 형식이야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절과 기일을 챙기는 일은 지출이 발생하고 품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각자의 처지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맏이라고 해서 내가 일방적으로 그것들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수씨는 그간 혼자 며느리 역할하느라 너무 많은 고생을 했고, 그 점에 대해서는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각설하고, 아무튼 동생이 일부러 시간 내서 나를 찾아와 함께 식사하며 속엣말을 나눈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서 말이나마 "앞으로 가끔 이렇게 만나 밥 먹고 안부 나누자." 했더니, 동생도 "그래요" 하며 좋다고 했다. 괜스레 마음이 푸근해졌다. 잠시나마 동생이 닮고 싶어 했던, 오래 전의 형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다만 또 엄마 생각이 나서 가슴이 잠깐 먹먹해졌다. 가족들 만나 정겨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꾸만, 예외 없이 어머니가 생각난다. 참 희한하다.

 

"엄마, 그곳에서 잘 계신 거죠? 보세요. 우리 형제들은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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