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자신을 믿는 일'의 어려움 (10-15-일, 맑음) 본문
운동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로션을 놓고 와서 다시 돌아왔다. 결국 그냥 집에서 자전거를 탔는데, 요즘에는 점심 먹고 나면 극도의 피곤함을 느껴 낮잠을 자게 된다. 물론 집에 있을 때 한정해서 그렇다는 말인다. 약간 방심해서 흰밥을 평소보다 많이 먹었더니 혈당이 급격하게 치솟곤 했는데, 그것과 피곤함이 관련된 게 분명하다. 혈당이 높아지면 쉽게 피곤함을 느끼고 졸음이 쏟아진다고 한다. 강도 높게 혈당 관리를 시작한 초기에는 없던 증상이다. 몸무게는 여전히 64kg, 적정선이고 혈압도 100-69 정상이다. 공복혈당도 94~98 지극히 정상인데, 오로지 식후 혈당만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물론 밥의 양을 줄이면 되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줄여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햇반 발아현미 210g짜리(반 3분의 2 공기) 한 팩을 먹으면 간에 기별도 안 가지만 어쩌겠는가. 견딜 수밖에. 면과 빵, 떡까지 즐겼다면 혈당은 난리 났을 것이다. 아, 정말 삶의 질이 이렇게 떨어지다니.
몇 개의 계획을 또 머릿속에서 세웠다. 오래전에 세웠지만 지키지 못한 계획들도 시효가 지나거나 남은 상태로 머릿속에서 먼지에 덮여 있는 중이다. 계획은 깨뜨리기 위해 세우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했고, 그저 말장난일 뿐이라는 생각도 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하니 깨뜨리기 위해서 계획을 세운다는 말은 지독한 말장난일 뿐이었다. 계획은 기록이 아니다. 깨드릴 게 아니라 완수해야 하는 무언가이다. 완수가 목표였지만 대체로 혹은 여전히 깨뜨릴 뿐인 계획 중에는 이를테면 시 쓰기, 산에 가기, 책 읽기와 산책 같은 물리적인 노력보다는 의지가 필요한 계획들이 대부분이다. 쉽다면 쉬운 이런 계획조차 완수할 수 없다면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계획 완수를 위해 의지를 키울 계획을 먼저 세워야 하는 건가? 의지를 키우기 위한 계획은 도대체 어떻게 완수할 수 있는 것이지? 매번 계획만 세우다 보니 계획을 언제 어떻게 세울까를 계획하는, 정말이지, 웃지 못할 일도 생길지 몰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할 때 '계획을 위한 계획'을 세운다. 지키지 못할 걸 스스로 알기에, 아니 안다기보다는 불안해서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자신의 내면을 믿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믿고 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나는 계획에서 머문 채 진일보하지 못한 허다한 계획을 부끄럽게 바라보며 다시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깨뜨리기 위한 계획은 절대 아니고, 깨질 수 있는 계획임은 인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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