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왜 자꾸 뭔가가 고장 나는 거야? (07-23-일, 종일 비) 본문
4테라바이트 도시바 외장하드가 절명했다. 당연하게도 수백 편의 영화, 수천 개의 음악 등 그 안에 저장돼 있던 모든 자료를 잃었다. 아니다. 사실 잃은 게 아니라 버렸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맘만 먹었으면 고칠 수도 있었으니. 얼마 전부터 컴퓨터(데스크톱, 노트북, 태블릿)에 연결해도 불빛만 반짝일 뿐 하드가 인식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몇 군데 전문 복구 업체에 연락해 봤더니 견적이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50만 원이 나왔다. 맘마 미아!!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동작 등만 반짝거리는 게 너무 얄밉고 어이가 없어 PC에서 뽑아 던져 버렸다. 오호통재라! 겉과 속이 분리된 채 널브러진 하드를 보면서 금방 후회했다. 경계성 장애 환자도 아니고, 너무 성급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유해(?)를 수습해 임시로 서랍에 넣어 두었다. 혹시 모른잖아. 불에 타거나 물에 젖은 파일도 저가에 복원할 수 있는 축복과 부활의 날이 도래할지도. 그리고 빨리 잊기로 했다. 잊히지 않아도 잊기로 했다. 어쩔 것인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깨어진 외장하드인데.
요즘 집에 있는 가전들이 하나둘 고장 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공기청정기가 고장 났고 곧이어 음식물 쓰레기 냉장고가 고장 나서 버렸다. 그리고 오늘 외장하드가 고장 났다. 몸도 고장 나고 기계도 고장 나고……, 이거 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는 ‘사랑의 경고’인가? 왜 두려움이 아니고 사랑이냐고? 그건 이러한 경고를 계기로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그간의 건강하지 않았던 삶의 방식과 패턴을 하나씩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짐이 늘 나쁜 것은 아니다. 나쁜 일이 벌어질 걸 미리 알려줌으로써 나중에 더 큰 비극을 예방할 수 있으니. 애정 없는 상대에게 경고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신이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무튼 현재 나는 그간의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으니 일련의 조짐과 신의 경고는 모두 나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밖에. 솔직히 물건이든 몸이든 망가지는 건 안타깝지만, 이런 종류의 조짐과 경고는 언제 어느 때고 겸허히 받아들일 용의가 나에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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