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Valentine Day, 두 편의 영화를 보다 (02-14-화, 맑음) 본문
❚기대하진 않았지만, 장난 삼아서라도 초콜릿을 보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SNS로 이모티콘이나 사진이나마 보내준 처자들이 있었는데, (물론 자기들도 겸연쩍었는지 ‘ㅋㅋ’이나 ‘ㅎㅎ’ 혹은 ‘^^’ 등을 덧붙이긴 했지만) 이제는 나이 먹으니 그런 낭만이 없어진 모양이다. 하긴 뉴스를 보면 욕부터 나오는 이런 시국에 족보도 없는 남의 나라 기념일을 챙기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어 보였겠는가. 하지만 좀 서글프다. 점점 더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예쁜 짓’들을 못 견디는 건 늙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시답잖은 장난이지만 그렇게 한 번 더 소식을 전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는 한결같이 있어.’라고 안부를 나누는 일은 소중한 것이다. 모든 게 사무적으로 변하고 소통하려는 작은 시도조차 귀찮아지기 시작했다면, 그건 확실히 늙은 것이다. 화이트데이가 돌아오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친한 선후배 여성들에게 탐스러운 사탕 이미지를 보내줄 생각이다. ‘이건 뭐지?’ 하며 뜨악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이다.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우연하게도 두 편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었고, 서너 달에 걸친 극한의 여정을 다뤘으며,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하나는 호주 여배우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실제 인물인 로빈 데이비슨을 연기한 <트랙스>. 로빈 데이비슨은 앨리스 스프링스부터 인도양까지 호주 사막 2,740km를 횡단한 여성이다. 광활하고도 고독한 사막 속 위험천만한 여정이 그림처럼 펼쳐지는데, 보는 내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영화였다. 특히 낙타가 너무도 신비한 매력을 지닌 동물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작품은 리즈 위더스푼이 실제 인물 셰릴 스트레이드(영화 제목 『와일드』는 그녀의 자서전 제목이다)를 연기한 <와일드>.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버팀목이었던 엄마의 죽음 이후, 인생을 포기한 채 술과 마약, 혼음에 빠져 삶의 나락 속에서 살아가던 셰릴 스트레이드가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공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로 여정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PCT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총 4,300km에 달하는 장거리 트레일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련의 상황을 겪고 이겨내며 주인공은 점차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두 영화 모두 상처받은 인간이 어느 날 문득 자신의 품을 찾아들면 자연은 언제나 엄마처럼 그 너른 품으로 인간을 안아주고 상처를 정화해 주는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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