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당신, 혹은 당신 둘을 자주 생각해요 (23-2-12-일, 구름) 본문
▮만약 나에게 작은 새 집이 생긴다면 누구보다 예쁘게 꾸밀 자신이 있어요. 지금 살고 있는 낡은 집도 이렇듯 예쁘게 꾸미고 사는데 새 집이라면 말해 뭐 하겠어요.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그러나 두꺼비는 새 집을 줄 수 없지요. 설사 두꺼비가 새 집을 준다 해도 그 집에서 당신과 살 수는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늘 함께 해주세요. 언제나 내게 힘이 돼 주던 당신이 요즘 들어 자주 생각나요. 그 새벽 내가 만약 당신의 잠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당신은 이튿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어나 환하게 웃었을까요? 늘 앉던 소파에 앉아 소녀 같은 미소를 지었을까요? 당신의 컵임을 구별하기 당신이 컵 손잡이에 달아두었던 작은 핀이 생각났어요. 그 달랑거리던 핀을 보며 얼마나 웃었던지. 당신의 센스에 정말 놀랐다니까요. 다림질은 또 얼마나 잘하셨어요? 당신이 다려놓은 바지 주름에 손날을 베일 지경이었다니까요. 책상에 놓아주었던 빨간 홍시도 생각나는군요. 깨끗하게 닦아서 접시에 올린 다음 키친타월로 살짝 덮어서 가져다 놓았던 그 홍시, 얼마나 맛있었는데요. 공부도 열심히 하셨고, 운동도 열심히 하셨던 당신, 멋지고 고마웠던 당신. 하지만 내가 당신을 떠올릴 때는 늘 미안한 마음이 먼저입니다. 지금 나는 당신 생각만 하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언제쯤 나는 당신을 편안한 마음으로 떠올릴 수 있을까요. 오늘도 화초에 물을 주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테라스에 나가 차를 마시다가 문득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보고 싶어요. 아참, 내가 당신 말고 '당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또 생겼다는 걸 당신은 아시는지요.
▮또 다른 당신, 당신이 왔다가면 이후로도 며칠씩 당신의 흔적이 방에서 발견됩니다. 그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 제겐 즐거운 놀이 같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 동안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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